유희동 기상청장

유희동 기상청장
유희동 기상청장

"목련과 매화, 살구꽃, 앵두꽃, 자두꽃이 거의 같은 시기에 피고, 조팝나무 라일락이 그다음을 잇는다. 그것들이 한꺼번에 피었을 때 나는 나의 작은 집과 함께 붕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은 황홀감을 맛본다."

박완서 산문집 ‘호미’에서는 봄을 이렇게 묘사했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면 봄이 왔겠거니 생각되는데, 봄이 시작되는 기준이 따로 있을까?

기상청은 일평균기온이 5도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내려가지 않는 첫날을 봄의 시작일로 정하고 있다. 기온을 측정할 수 없던 옛날에는 생물의 변화를 통해 계절 변화를 느끼고 농사 시기를 정했다. ‘감꽃 필 때 볍씨 파종한다’라는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계절의 빠르고 늦음, 지역적 차이 등을 합리적으로 관측하고 통계 분석해 기후변화의 추이를 총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기상청에서는 계절관측을 수행하고 있다.

‘봄이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처럼 동물계절은 제비와 같은 철새의 이동 상태,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의 움직임, 곤충들의 변태 등 계절에 따른 생활 상태와 처음 본 날과 마지막 본 날, 소리를 들은 첫날과 마지막 날을 관측함으로써 알 수 있다. 현재 지정 동물로는 제비, 뻐꾸기, 개구리, 나비, 잠자리, 매미 6종이 있는데, 큰 도시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개구리는 광역시 이상에서는 관측이 제외된다. 예전에는 기러기, 종다리, 뱀도 지정 동물이었는데 도시화로 관측이 어려워져 아쉽게도 2015년에 중단됐다.

그렇다면 식물계절관측은 어떻게 할까? 식물계절 관측 지정 수목은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복숭아, 배나무, 아까시나무, 코스모스, 은행나무, 단풍나무 10종이다.

식물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기상관서 내 관측장소 또는 가능한 부근 일대를 대표할 만한 장소를 정해 매년 같은 장소에서 관측한다. 지정된 표준목에 대해 발아, 꽃 핌(개화), 활짝 핌(만발)을 관측하고, 단풍의 경우 20% 물들기 시작한 날을 단풍 시작일, 80% 정도 물들었을 때를 절정일로 본다.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보고서(2021년 4월)’에 따르면 최근 30년(1991~2020년) 동안의 봄 시작일은 3월 1일이다. 이는 3월 17일이 봄 시작일이던 과거 30년(1912~1940년)보다 17일 정도 빨라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봄 시작일은 지속해서 빨라져, 2090년대에는 1월 28일까지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지난 109년간 봄과 여름은 빨라지고 가을과 겨울은 늦어졌으며, 최근 30년간 여름은 118일로 약 4개월간 지속되는 가장 긴 계절이 됐다. 이렇게 100여 년의 짧은 기간 만에 기후변화는 우리 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봄꽃들의 이른 개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얼어붙었던 대지는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녹여주는 온기가 반갑지만, 봄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반가워만 할 수는 없다.

먼 미래의 일인 줄 알았던 기후변화는 어느새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왔다. 모두 함께 기후변화를 인식하고 노력한다면 다가온 기후변화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기상청은 기후변화를 더욱 철저히 감시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과학정보를 제공해 나가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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