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시인)

#기상 이변

기후 변화의 징후인가. 올겨울도 그리 춥지 않다. 내가 매일 걷는 신천은 올해 거의 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남녘의 곳곳에서 벌써 홍매화가 피고, 영춘화가 피었다는 소식들이 카톡에 뜬다. 신천 상류의 산책길에 꽤 큰 매화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하마 꽃봉오리들이 탱탱해져 있고, 몇 송이는 이미 피었다. 며칠 전 들린 울산 바닷가에는 매화가 만발했다. 정월대보름이 아직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봄기운이 완연한 것이다.

우리네 봄소식만 그렇듯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최근 뉴스에서 접하는 기상 이변 소식들은 한결같이 놀라운 것들이다. 지난해 파키스탄의 홍수는 과거에 유례가 없던 일이다. 연전의 중국의 가뭄으로 양쯔강의 바닥이 드러난 것도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런 이변이 지금도 전 지구적인 현상으로 빈발하고 있다.

기상 이변에 의한 재난 우려가 현실화해 간다. 그런 가운데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관리가 그 절박함에 비해 느리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오르고 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점점 더 고조된다. 기후에 대한 우려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2도를 넘지 않아야 함을 마지노선으로 삼는다. 그 이상으로 올라가면 엄청난 재난이 예상되는 만큼 이를 인류가 막아내야 할 한계점으로 꼽는 것이다.

지금은 글로벌 시대다. 한 지역의 일이 각 지역에 영향을 미친다. 기후 변화에 의한 영향은 더욱 그러하다. 이상 기후로 인한 지구 온도의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각국의 관리와 연대가 요구된다. 탄소 중립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감축이 시급한 것이다. 늘어나는 전 세계 인구는 2050년이면 100억에 이른다고 예상되는 만큼 이들이 뿜어낼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억제와 관리 대책이 강구되고 그 실천 책이 가동되어야 한다.

#받듬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은 인간들의 활동과 관계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오만이 빚은 결과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사회와 경제 및 과학의 적절한 대응이 시급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 지구인들의 겸손한 자연관이 요구된다. 그 대안으로 꼽히는 발언과 책들도 많이 나온다. 그 책들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지금의 생활 방식과 태도를 반성한다.

‘향모를 땋으며’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후예로 생태학자이며 작가인 로빈 월 키머러(1953년~)의 책이다. 아이들의 어머니이기도 한 키머러는 아득한 시간을 이어온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과 지혜를 통해서 식물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현대 과학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세 자매인 옥수수와 콩, 호박. 옥수수는 콩이 타고 올라올 지지대가 되어주고, 콩은 질소고정으로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호박은 낮고 넓게 자라면서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 세 자매는 높이가 들쭉날쭉한 덕에 해의 선물인 빛을 버리는 것 없이 알차게 쓴다’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호혜적 관계’를 강조하는 그녀의 말은 감동적이다. 식물들의 관계가 그러할진 데, 거기에 인간을 포함하면 얼마나 지극한 생태의 구조가 이루어질까?

그래,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만이 상한 지구를 치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속했던 포타와토미족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경우,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취할 때 생기는 긴장을 해소하는 방식이 있단다. 그러한 행위를 ‘받드는 거둠’(Honorable Harvest)이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는 단백질을 취하기 위해 동물들을 죽인다. 음식을 위해 식물들을 마구 채취한다. 그 점에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 긴장이 생긴다. 그 점을 해소하는 것으로 서로 감사하고 떠받드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보살피는 이들의 방식을 알라. 그러면 그들을 보살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대고 취하는 자연에 대한 그러한 경건한 받듬의 태도야말로 지구를 재앙에서 구할 확실한 실천의 마음가짐이라는 것이다.

#이천식천

자연과 인간 간의 ‘받드는 마음’에 대한 관심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사상이 이어져 왔다. 한국사에서 최장기 지명수배자로 꼽히는 해월 최시형의 사상이 그것이다. 해월은 스승 수운 최제우의 사상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데 평생을 바친 천재적인 실천 사상가이다. 반상의 구별이 확실했던 조선조 말의 상황에서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줄기차게 주창했다. 남녀 차별을 철폐하고,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도 평등과 자유로움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어린이에 대한 그의 생각은 나중에 ‘어린이날’을 정하는 결정적인 단초가 되기도 했다. 그의 자연관은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한다.

그의 사상의 한 극점인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다’(以天食天)는 ‘한울이 한울을 먹여살린다’라고도 하는 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가 먹는 행위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 행위가 일어나는 과정은 지극해야 한다. 먹는 우리는 한울의 존재이며, 먹히는 것들도 다 한울의 존재이므로 서로 존중하여야 한다. 먹는 이는 그 먹이를 제공하는 쪽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등 아주 조심스럽게 그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서구적인 관념에서는 수긍하기 힘든 사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머러를 비롯한 자연에 대한 이런 지극한 관점들이 서구의 독서계를 풍미하는 등, 전 지구적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게 아이러니하다.

오늘날 지구의 기후 위기 등 재앙의 조짐들은 이처럼 자연을 향한 받듬과 존중의 태도가 결여된 데서 심화된 것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자. 첨단을 달리는 과학에게도 이런 관점에서 말하고 싶다. 부디 자연에 대한 받듬과 존중에 기반을 둔 가운데, 인간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과학을 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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