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환 문의구룡예술촌장

정월의 어느 날 타 지방의 작은 시골 책방을 찾았다.

반시간의 여행길에 나는 들떠 있었다. 새로움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책지기의 안목과 어떠한 주제로 나를 맞을지 궁금하다. 코드가 맞는 분들과 대화는 신선한 소통의 마음 열림이기 때문이다.

지난 년도를 거슬러 문학적 계획과 실행 안에서 나는 과연 어떠한 감성으로 맞았는지 생각을 반복하였다. 그 중 글공부 수강생이 매번 편지지에 손 글씨로 수필을 쓰는 분이 있었다. 글도 좋았으며 생각의 정리가 틀리지도 않고 써내려간 문장 또한 일품이었다. 컴퓨터 타자가 아닌 손으로 써내려간 글씨가 정성스럽게 다가왔다.

책방의 책장을 훑었다. 책방 주인의 책 선별 분야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책 옆 종이 꽃이에 쓴 손 글씨가 보인다.

짧은 글이지만 감성의 글이다. 생각이 멎는다. 알림 아닌 요약성의 멘트이다. 어쩌면 마음 전달의 통함이다. 글씨가 캘리 같이 예쁘지 않더라도 정성의 책에 대한 평론성 내용이다. 나는 끝내 그 책을 펴들었다.

내가 시골 작은 책방을 찾는 이유이다. 큰 서점은 진열장에 많은 책을 꽃아 놓지만 선별은 본인 몫이다. 사전에 책 검색을 하거나 추천한 책을 먼저 꺼내본다. 책의 풍요 속에서 감성의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눈에 보이는 손 글씨의 요약과 쉽게 다가가는 친밀감으로 나를 서게 한다.

집에서도 가끔은 손 편지를 꺼내 읽는다. 40여년이 지난 편지 글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며 청년기 그 시절 나의 글을 보며 감회를 즐긴다. 절절한 지난 역사를 보면서 손으로 직접 글을 쓰고 마음을 전했던 손 편지의 문화를 보았다. 사연 속 추억에 빠져 나는 문학 소년이 되어 있었다.

현대의 손 편지는 짧다. 그만큼 바쁜 세상에서 집약된 공간 안에 전달과 독특한 창작의 표현이 더욱 요구된다. 또한 손 편지는 읽는 시점과 시차가 있다. 속 깊은 마음의 말과 생각의 감정을 담아 눌러 쓴 글씨는 종이 위 미학의 창(窓)이다. 시차를 둔 감정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변화된 진실이 바르게 비추어질지 의문이다.

쓴 날짜와 이름, 추신의 내용까지 한 자 한 자 모두가 애틋한 마음의 점이다. 하고픈 말의 언어를 손 온도를 거쳐 쓴 글이 나의 마음 움직임으로 다가온 지금, 나는 그때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지금 한 쪽을 장식해준 그 분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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