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대전시사회서비스원 원장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한국인의 뻔한 거짓말 중 하나라고 한다. 다음에 보자는 인사 대신 쓴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듣고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누군가와 밥을 먹자고 약속했다면 나는 언제가 편할지를 물어본다. 다음에 보자고 말을 나눈 뒤에는 가까운 시일에 상대에게 연락을 취한다. 약속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이면 큰손주의 아침 식사와 등교를 챙긴다. 8살짜리 아이의 입맛이 독특해서 향이 꼬릿꼬릿한 보리굴비를 그렇게 좋아한다. 등굣길에 종종 "할머니, 내일 보리굴비 해주세요"라며 애교 섞인 반찬 주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밤늦은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손주에게 먹일 보리굴비를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빼고 손질을 해둔다. 약속을 지킨 결과로 일주일 동안 보리굴비의 꼬릿한 향이 집안 곳곳에 남지만, 손주의 행복한 미소와 밥 한 알 없이 싹싹 비워진 밥그릇을 보면 대만족이다.

의원 시절부터 내 손에는 ‘약속 수첩’이 항상 함께했다. 민원인과 만날 때마다 약속 수첩을 펴서 민원 내용, 날짜, 처리 결과를 메모한다. 민원을 처리했을 때는 동그라미, 진행 중일 때는 세모, 안타깝게도 민원 처리가 되지 않을 때는 엑스 표시를 하며 관리한다. 진행 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처리가 되지 않을 때는 그 이유를 관계 기관과 함께 민원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어느 날 연로하신 민원인 한 분과 대화를 나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이 없어 옆 동네를 가려면 20~30분을 빙 둘러서 가야만 한단다. 어르신들이 많은 곳이라 민원을 접수하자마자 관련 기관 담당자와 소통했다. 어렵다, 불가하다는 답변에 ‘한번 현장을 직접 살펴봐 달라’고 요청했고, 현장을 살피고 나서야 담당자가 민원 내용에 공감하며 해결할 수 있었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렇기에 신중히 고민하고, 확실한 결심이 섰을 때 약속해야 한다.

취임 이후 제일 먼저 사회서비스 현장 관계자분들과 만남을 가졌다. 현장의 분위기, 생각,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현장에서 가장 필요로 했던 부분이 바로 ‘처우 개선’이었다. ‘사회복지 독립청사 건립’ 또한 오랜 바람이라고 들었다. 여러 의견을 듣고, 생각했다.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인지, 해결할 수 있다면 임기 내에 얼마만큼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고 이내 결심했다.

그 결심은 지난해 2월 이장우 시장님과의 만남 때 시장님의 약속 사항으로 이어졌다. 올해 대전시는 2026년까지 ‘제4차 사회복지 종사자 처우 개선 추진계획’을 마련했다. 대전형 임금체계 구축, 자체 수당 개선, 근로환경 개선, 역량 강화·지위 향상이라는 4대 추진 전략 아래 이를 실현하기 위한 10대 과제·21개 사업이 이뤄질 예정이다.

남은 임기 동안 ‘독립청사 건립’이라는 또 다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리굴비 반찬 약속의 결과로 행복한 손주의 표정을 봤던 것처럼 사회서비스 종사자분들의 행복한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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