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범 단국대학교 정책경영대학원 초빙교수

20여 년 전인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서 "대한민국에 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해석은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의 손에 달려 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규제 전봇대를 뽑는다고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손톱 밑에 가시를 뽑겠다고 했다. 문재인 전대통령은 ‘붉은 깃발’론으로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고 했다. 그러나 규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규제는 계속해서 생겨나는 형국이다.

법령에 의한 규제뿐만이 아니라 개별 공무원의 법령에 대한 해석에 대한 태도가 더욱 문제이다. 공장설립 함에 있어 승인신청→부서협의→승인→건축허가 등 절차 뿐 아니라 환경·교통·재해영향평가, 문화재 지표조사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둘이 아니고 시간도 보통 3년 이상이 걸린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행정청이 보수적, 방어적 법해석으로 안 된다고 했을 때 기업인은 금전적 손실과 큰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소송을 한다고 해도 좀처럼 기업인이 승소 판결을 얻어내기 어렵다. 행정청이 환경, 안전 등을 이유로 거부처분을 했을 때 사법부는 거의 "행정청에 광범위한 재량이 있다."고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2024년 새해 언론에 빅뉴스가 떴다. 울산시 공무원 최금석 씨가 최소 3년 걸린다던 현대차 신 공장 인허가를 10개월 만에 해결해 특별승진을 했다고 한다. 그는 김두겸 울산시장이 "현대자동차 사람들이 당신 말고는 다른 공무원들 만날 일이 없도록 해줘라. 인허가 관련 공무원들을 당신이 다 만나서 해결해줘라."라는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고 했다. 이 인허가 문제를 현대차에게만 맡겼다가는 3년이 아니라 하세월일 거라는 것은 불문가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사례는 충남도에서도 있었다. 2004년 1월에 삼성에서 아산 탕정에 LCD단지를 조성하려하자 당시 심대평 도지사는 ‘삼성지원팀’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산업단지 지정·개발 과정의 일체를 도왔다. 2004년 2월 23일에 지정 신청해 8월 5일에 지정승인고시를 했으므로 6개월 만에 해결한 것이다. 참으로 국가,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결단이자 괄목할 만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방자치단체의 이런 파격적인 서비스는 경제적 파급효과와 고용효과가 큰 거대기업 위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필자는 중소 기업인이 허가 신청 시에 주변주민들의 동의서를 받아오라거나, 본 허가를 받았더라도 부수적인 하위허가에 태클이 걸려 기간이 지연돼 금융위기를 겪거나 심적인 고통을 당하는 중소기업인 을 많이 보아왔다. 최첨단 글로벌 기업을 육성해야하는 일은 국가의 생존전략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도 동등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근접한 행정서비스라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평등의 원리를 국민이 인정하는 흐뭇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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