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석(1958~ )

마른 목련 나무에
눈 내린다
눈은 나리고
봄꽃이 그리운
직박구리 두 마리
부리로 눈꽃을 턴다
지는 꽃잎처럼
땅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들
나무는 온몸에
조막막 한 눈집들을 가득 매단 채
가만히 서 있다
저 묵언默言의 겨울
가슴 깊숙이
봄의 새끼들이 부화하고 있나
직박구리 떠나간 자리에
빈속처럼
눈이 내린다

눈이 덮인 세상에서도 풍경 속으로 움트는 온기가 있어 겨울과 연말의 어수선함 줄어든다. 마른 목련 나무 가파른 가지 위로 내려앉은 눈. 그것은 비워서 비로소 차오르는 생의 역설이 아닌지. 가지에 내린 직박구리 두 마리는 필시 한 쌍일 것이다. 그 둘 사이에 사랑이 싹틈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들은 눈 속에서도 이미 봄꽃의 화려함으로 넘친다. 직박구리 부리로 눈꽃을 털자 목련 꽃잎은 땅으로 떨어진다. 쉬지 않고 내리는 눈 화관을 쓰고 겨울나무는 묵언 수행 중이다. 그래. 이렇게 한 해의 강을 건너고 있다.

나무들 묵언 속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을까. 그들 가슴 안에는 봄의 새끼들이 부화하고 있다. 직박구리 떠난 자리를 채우며 눈은 그침 없이 내려 쌓인다. 이제 곧 직박구리가 새해를 맞이해 턱시도 갖춰 입고 가지 위에 나란히 앉아 봄맞이할 날 멀지 않았다. 그때 봄꽃 대표를 자처하며 목련은 가지마다 청초한 꽃잎 피워낼 것이다. 생각해보노니 겨울의 눈꽃을 닮아 봄 목련은 희디흰 꽃잎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눈꽃의 영혼이 스미인 꽃잎을 열어 하늘을 퍼담는다. 그러니 목련은 눈꽃의 환생이고 눈꽃은 목련의 환생이 아니던가.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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