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우 배재대학교 아트앤웹툰학과 회화 교수 평생교육원장

누군가가 내 그림 앞에 서 있다. 그것도 한참 동안 말이다.

그럴 때면 오래전 나의 흔적을 들키는 것 같아 부끄럽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림이 그런가 보다.

그림은 어떤 식으로든 내가 들어가는 작업이다 보니 오래전 그림을 꺼내서 보게 되어도 추억처럼 그 시절이 떠오른다.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그랬는지 추억의 수첩을 꺼내서 보듯 그 오래전 그림도 내 자화상인 셈이다.

거기다 내가 아닌 타인이 뚫어지게 오랫동안 보고 있다면 내 삶의 상처를 남겼던 지나간 시간들의 생각들이 거품처럼 피어오른다. 이상하다. 내 그림을 내가 볼 때보다 타인이 내 그림을 볼 때면 더 그렇다.

그림은 말이 없기에 전적으로 보는 이의 마음이건만 한 번씩 마음이 쓰인다.

내 삶은 이렇듯 행복했던 시간과 아픈 기억들이 혼돈처럼 엮여 있지만 내가 저장된 공간 안에는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들이 평화롭게 기록되어 있다. 누군가를 원망해보지 않은 삶이 없고 누군가에게 미안해보지 않은 삶이 없지만 내 속에 들어있는 지난날의 상처와 부끄러움이 지금의 나를 미소 짓게 한다면. 남은 시간은 더 아름답게 살리라. 앞으로는 지나간 그림은 당분간 꺼내보지도 말아야지. 다짐을 한다.

새로운 나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니까. 힘들었던 2023년을 묻어두고 지내련다. 내일도 다시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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