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시인)

#삭제

가을이 왔단다. sns의 소식들이다. 그 가을들을 본다. 언덕에 핀 쑥부쟁이. 목이 긴 수크령. 역광으로 흔들리는 억새들. 스마트폰의 ‘카톡(카카오톡)’에는 이런 풍경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가을이 온 걸 알고 있다. 그런 풍경들 앞에 자주 서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신천 상류의 양안을 산책하면서 가을의 꽃과 나뭇잎 색깔들의 변화, 물빛의 고요와 그 고요를 적막화 하는 백로들의 외로운 모습들을 본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에 아랑곳없이 카카오톡에는 처음 보내는 가을 소식인 양, 놀라움과 반가움이 서린 말들과 함께 사진들이 끊임없이 쌓인다.

너무 번잡하고, 귀찮을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바로 삭제해버린다.

내 스마트폰의 용량이 적어서 많은 자료들, 특히 사진 자료들이 쌓이면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기에 지워버린다고 변명하면서 말이다.

사실은, 그런 정보들이 귀찮기 짝이 없어서 지운다고 말하는 게 솔직한 마음이리라. 혹은 ‘무례하게’, 또는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그것들이 감당이 안 된다고 해야 한다. 내가 속한 단체나 각종 모임의 카카오톡은 긴요한 정보나 알림보다는 그런 ‘감정의 배설’들이나 자기 자랑들이 대부분이다.

이상한 논리의 전개도 있고, 자신의 여행 사진들이 정리도 안 된 채 마구 빽빽하게 전송되기도 한다. 그런, 나와 상관없는 ‘쓰레기’들이 무분별하게 ‘처들어오고’, ‘달려들 듯’ 막무가내로 전송되기에 그걸 확인하는 일에 지칠 지경이다. 때로 알림 소리를 무음으로 해놓는데, 그래도 잠시 만에 쌓이는 쓸데없는 소식들에 막무가내로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런 성가심과 짜증 때문에, 때로는 ‘나가기’를 통해 그 말들로부터 벗어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이런 글을 읽는다. "이제 카카오특을 삭제할까 한다. 친구들이랑은 전화나 문자해야지. 아이폰 쓰는 사람하고만 소통할거잉. 쓸데없이 많이 들어가져 있는 단톡방도 곧 정리할 생각." 이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인해 어지간히 골치를 썩은 모양이다.

하도 많이 ‘쳐들어오는’ 이런 문자와 사진들의 성가심 때문에-일방적이긴 하지만- 삭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지우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정리한다. 카카오톡의 친구 정리를 해버리기도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를 버리는’ 이런 행위를 통해 관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가을의 나무들이 낙엽을 떨구고 나목으로 서듯이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sns에 넘쳐나는 그런 ‘막무가내’의 말들을 삭제하여 고요해진(?) 세계에 안착하길 꿈꾼다. 그리하여 기계를 통한 비인간적 접촉을 벗어나 실제의 가을 풍경 앞에 서서, 관계에 대한 사회적 거리, 삶이 가져야 할 적막의 의미를 헤아리고 싶어한다.

#폐기

가을은 폐기의 계절이라 말하기도 한다. 나무들이 제가 가졌던 무성한 잎들을 버리듯, 모든 게 허전하고 공허해진다.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 씩/비어가고 있습니다"(이성선의 ‘가을편지’)라는 시가 생각난다. 그런 계절감에 따라 우리도 과도하게 가진 것들을 버리고, 단출하고도 단순한 삶의 모습으로 서기를 꿈꾼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버리는 것으로 단연 책이 먼저 꼽히는 게 아이러니하다.

젊은 날에는 책들이 쌓이면 공부 이력이 높아지는 느낌을 주었지만, 이제는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책들을 버리기 시작한다. 나 역시 몇 번에 걸쳐서 가진 책들을 도서관이나, 단체의 서고 등에 기증해왔다. 지금도 다시 쌓인 책들을 정리하여 보낼 곳을 헤아린다. 몇 년 전부터 해온 일이지만, 시집들은 어느 정도 쌓이면, 안동의 피재현 시인이 운영하는 시집도서관으로 보낸다. 다른 책들은 그 쓰임새에 따라 필요한 이들에게 준다. 잡지들은 필요한 부분을 뜯어내고 쓰레기 분리수거함에 넣어버린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점점 더 책의 처리가 골칫거리가 되어가는 듯하다. 대학 교수들이 정년퇴임 후 가장 먼저 당면하는 문제가 연구실에 쌓인 책과 자료들의 처리 문제라고 한다.

과거에는 평생 모은 책과 자료들을 해당대학의 도서관이나 공공 도서관 등에 기증, 누구누구의 서고라는 팻말을 붙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책을 받아주는 도서관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연구실 앞에 책을 쌓아두고 필요한 이가 있으면 가져가게 한다. 그러고 남은 책들은 대부분 쓰레기로 버려진다.

마침 책 버리기에 관한 기사가 한 신문에 실려 눈길을 끈다. 울산대가 장서 94만여 권 중 절반 가까운 45만 권을 폐기할 예정이란다. 올 하반기부터 35억 원을 들여 중앙도서관의 1~5층 서가를 없애고, 디지털 열람실, 전시관, 노트북존 등을 만든다는 것. 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는 모양이다.

울산대만이 아니다. 전국 대학 도서관이 폐기한 책이 2020년 110만 권에서 2021년 165만 권, 2022년 206만 권으로 느는 추세다. 이를 두고 ‘책 장례식’이라 하기도 한다. 서고 대신 전시관이나 카페 등으로 바꾸기도 한단다. 일찍이 예견되긴 했지만, 종이책의 종언이 앞당겨지는 게 아닌지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마저 책 대신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등 전자 자료 이용이 급증한다. 과거 식자들의 서고에 빠지지 않던 조선왕조실록이나 백과사전 같은 방대한 자료들이 이미 인터넷 속에 고스란힌 들어있어서 이용이 더 편리하니, 그 자료들이 쓸모없는 짐이 될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의 사례처럼 여러 대학이 함께 ‘공동 보존 서고’를 운영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필요성도 대두된다.

어쨌든 책의 폐기가 많이 이루어짐에 따라 덩달아 책을 버리고, 처분하는 방법들이 꽤 다양하게 소개되기도 한다.

이 가을에, 버리려고 서가에서 책을 골라내는 것은 자신의 꿈과 욕망과의 이별의 의식(儀式)처럼 여겨져 짠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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