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선 시인·국제PEN한국본부 충북지역위원회 회장

매년 추석을 앞두고 남편은 예초기 성능을 체크한다. 본가와 처가의 산소 벌초를 위한 사전 점검이다. 본가의 벌초는 문의면 언저리이고, 사촌 형님들이 많으니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맏사위로 먼 경주의 친정 부모님 산소 벌초를 하러 가는 것은 여간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지역의 농협이나 산림조합에서 벌초 대행을 해주는 곳이 많이 있다. 여기서 경주까지 다녀오는 경비와 시간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절 전 벌초를 하면서 성묘까지 하고 오는 것을 관례처럼 생각하는 그이는 어릴 적부터 몸에 밴 유교 사상이리라.

불과 6~7년 전만 하여도 명절 때마다 사남매의 장남인 우리 집에서 송편을 만들고, 여러 기지 전을 부치며 형제들이 모여 시아버님 제사를 모셨다. 그러다 내 양쪽 어깨와 오른쪽 팔꿈치 고장이 났다. 서너 곳의 병원을 전전하며 시술하였고. 재활치료를 하였다. 다행히 어깨는 의학의 도움으로 무리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불편은 없어졌다,

이런 내 몸의 아우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시어머님이 개혁 선언을 하셨다.

집에서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는 대신 산적과 과일, 포, 술을 준비해 명절 아침 산소를 찾아 성묘하면서 차례를 대신하자는 결정하셨다.

시대가 변했으니 신(新) 명절 풍습을 만들어 편하게 살자는 뜻에 형제들도 아이들도 모두 찬성하였다. 아들, 딸들은 엄마의 명절이 힘들지 않으니 좋다고 하였고, 시동생과 동서는 우리도 명절 때 남들처럼 여행을 갈 수 있다며 좋아했다. 풍습을 바꾸며 다행히 두 어깨를 짓누르던 명절 증후군도 사라졌다. 명절 제사 간소화 바람은 연세 드신 사촌 동서들도 대환영하며 시어머님의 현명한 판단이 시댁 집안 명절 풍습을 바꾸었다.

벌초 역시 마찬가지이다. 문의면에 있는 선산은 범위도 넓고, 산소도 많아 예초기 3대로 종일 풀을 깎아야 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칠십 중반인 큰댁 아주버님이 벌초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하셨다. 대신 사촌 모임의 회비와 개인경비를 더해 지출되긴 하지만 몸은 편해졌다.

이번 주말 경주 선산으로 벌초하러 가는 날이다. 작은아버지께 친정 집안의 벌초 문화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보야겠다. 지금까지는 남편의 건강이 좋아서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이도 요즘 한쪽 어깨가 아파서 치료받고 있기에 올해는 건강을 이유로 가지 말자고 해도 고집을 부리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 여자들은 명절맞이 음식 준비가 가장 큰 걱정이다.

물론 송편을 빚는 집은 드물지만, 차례상에 올리는 제수 음식 준비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 친구들과 명절 준비 얘기가 나오면 우리 집안의 신(新) 명절 풍습을 알리는 전도사가 되었다.

대신 남자들의 고민은 단연코 벌초이다. 장정이 많아도 예전처럼 체력을 소모하는 일을 힘들어하고, 유교 사상을 지키는 계층은 이미 나이가 들어서 마음먹은 대로 벌초를 할 수 있는 세대는 아니다, 젊은 층은 장묘 대신 편리하게 화장하고 납골당을 이용하거나 수목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장묘문화라고 생각한다.

요즘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면 키오스크로 주문받고, 로봇이 음식 서빙을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쳇GPT에 질문하면 상세하게 알려준다. 로봇의 한계로 잘못된 정보를 알려 줄 때도 있다. 최첨단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장묘나 벌초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라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다. 거하게 차례상을 준비하면 먹지도 않는 음식 왜 이렇게 많이 해서 힘들게 하냐고 타박이다.

어느 부분은 옳은 말이다. 이젠 명절 풍습도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전통을 지키는 정신은 계승하고, 고물가 시대 소박하고 정성 가득한 상차림으로

조상님들을 기리는 문화로 바꿔보자 당장 이번 추석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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