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식(1951~ )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 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 쪽 떼어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은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차라리 나는 공갈빵이라고 선언한 것은 얼마나 당당한가. 내 안에는 가득한 바람밖에 없다고. 그것이 나의 전부이고 내가 가진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그리 알고 나를 찾아오든지 말든지 알아 하라고. 떳떳하게 드러내는 전략과 전술. 거짓처럼 부풀려진 2중 3중의 과대 포장으로 가려지는 삶 속에서. 그런데 겉은 멀쩡하나 속이 텅 빈 빵을 두고 가득 찬 빵이라 외친다면 그건 희극이 아닌가. 그러니 차라리 이렇듯 사실을 새겨 진실을 만드는 놀라운 네이밍.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역설의 힘으로.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이라고.

그러나 비움으로 채워진 의미는 진실로 큰 가치이니.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를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공갈빵이 돌아눕는다 한다. 이 한 줄에 숨겨진 많은 뜻의 의미는 잔잔한 파도처럼 행간을 일군다. 물로 배를 채우던 가난이 있었지만. 공기를 가득 담은 공갈빵의 차지게 늘어붙은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니. 모든 게 과잉된 이 시대에 헛배가 부른 우리들. 공갈빵이 그립다. 정말 공갈빵이 먹고 싶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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