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국제정치학 교수·전 국립외교원장)

윤석열 대통령이 2년 연속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지난해 나토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전략 개념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 나토는 2차대전 후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서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이 만든 집단동맹이었으며, 반대쪽에서는 바르샤바조약기구 출범으로 맞대응했다. 1990년대 초 냉전이 해체되자 집단동맹은 존재 이유가 희미해졌고, 바르샤바조약기구는 곧바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대유럽 영향력 유지를 위해 나토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미국이 냉전의 승리자였기에 가능했고, 또한 러시아를 적대국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나토 확대를 위한 동진은 멈추지 않았고, 우크라이나의 가입 건을 둘러싸고 전쟁에 이르렀다.

작년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나토는 냉전체제로 회귀하는 전략 개념을 채택했다. 중국과 러시아를 적대적 국가로 규정함으로써 전형적인 집단 군사동맹으로 복귀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위협에 대한 유럽의 결속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결국 핵심은 미국의 대중 봉쇄망의 강화다. 게다가 미국의 압박에 맞서 준동맹의 성격을 갖추어 가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관계를 견제하기 위해서 미국은 아시아의 양자 동맹 네트워크와 나토를 묶으려 한다. 자신의 지역 동맹을 연결함으로써 나토는 아시아로, 아시아는 유럽으로 동원할 기반을 삼으려는 것이다. 아시아판 나토 창설이라는 트럼프의 구상과 본질은 같다.

유럽 역시 아시아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관심이 있지만, 미국의 이러한 탈지역 시도에 대해 일부 유럽 국가는 난색이다. 최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도쿄에 나토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문제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나토의 지리적 확장이 나토의 유럽에 대한 집중력을 분산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미국이 유럽을 대중 봉쇄의 수단으로 이용할 경우, 중국과의 적대관계가 심화할 것이 부담스럽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정상회의 참석을 넘어 공공연하게 협력의 틀을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해 회의 직후 국가안보실 1차장 김태효는 한국-나토의 협력을 제도화할 것이라고 선언했었는데, 올해 구체적으로 군사정보, 대테러, 사이버 분야의 협력을 포함해 11개 분야에 개별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ITPP)을 나토와 체결했다. 곧바로 연락사무소나 협의체를 만드는 방식은 부담과 저항이 있을 수 있으므로, 분야별로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실제적 협력을 축적한 다음, 일정 수준에 이르면 공식화할 것이 예견된다.

혹자는 이것이 무슨 문제인가? 동맹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며, 윤대통령의 주장대로 자유주의 진영 국가들끼리 함께 중국, 러시아,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논리는 타당한가? 동맹은 교환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즉, 동맹관계를 맺으면 우리의 전쟁에서는 함께 싸울 원군을 얻게 되지만, 상대의 전쟁에 함께 싸워야 한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전쟁에 끌려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동맹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미국, 그리고 윤석열 정부는 한목소리로 나토와 한국의 안보는 서로 연결돼 있으며, 유럽에서 발생한 일은 인도·태평양에도 중요하고,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일은 나토에 중요하다면서 북한과 중국을 공동의 위협으로 지목했다. 그런데 이러한 연결 논리는 빈약한 동시에 위험하다. 스톨텐베르그는 올해 초 방한했을 때부터 한국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꾸준히 압박해왔고, 그것이 여러 경로를 통해 흘러나왔다. 한미 양국의 언론이 나토 회원국인 미국과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우회 지원한다는 사실을 꾸준히 보도했다. 특히 미국의 도청 문건에 한국의 포탄이 폴란드를 우회해서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정보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수품을, 그것도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미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한러관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푸틴을 포함한 러시아의 고위층이 공개적으로 경고해왔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등 나토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이유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말미암은 자신의 안보 위협이 켜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과연 누구로부터의 침공을 걱정하며 무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일까? 한국과 나토가 연결된다는 것은 바로 러시아와 적대관계를 확정하고, 전쟁에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은 책임 있는 중견국이자, 유엔 회원국으로서 침략국 러시아에 대해 유엔의 규탄 성명에 참여했고, 더 나아가 대러 경제제재까지 참여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대만, 싱가포르와 함께 4국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한국을 비우호국 명단에 올렸지만, 한러관계를 파탄 낼 정도는 아니다. 한국의 마땅한 책임은 여기까지여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우려를 자아낸다. 나토 정상회담 참석 직후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하고 ‘생즉사 사즉생’으로 연대해 싸우자는 말까지 던졌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지원 펀드를 만들고, 지뢰 탐지기 등의 군수품을 지원할 의도를 밝혔다. 4월 방미 직전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할 의향을 밝힌 것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세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쟁에 개입해야 한다는 명분이라면 미얀마에도, 아프간에도 그리고 수단에도 가야 한다는 말이 된다. 지난 7월 27일은 정전체제 70주년이었다.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유사 이래 가장 긴 전쟁 중인 우리가 세계의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개입한다는 논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동원되는 용병이 되는 길일 뿐이다. 정의와 자유를 말하는 것과 수많은 국민이 죽어가는 우크라이나에 가서 재건 참여의 경제적 이익을 실익을 말하는 것이, 같은 입에서 나온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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