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동 기상청장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다른 생물종에 비해 열악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고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그중 과학은 미래 인류의 발전을 주도하는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인류와 함께 성장하는 과학은 과학자 한 명에 의해 탄생했다기보다는 이전 과학자들의 성과와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성과와 노력이 더해진 ‘공동체적 성격의 산물’로 발전해 왔으며, 과학의 한 분야인 ‘기상학’도 그 흐름 속에서 발전의 과정을 거쳐 왔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철학‘을 제시하면서 자연에 대한 인식을 경험에 의한 보편적인 기술로 바라보았다. 기상학의 어원이 된 ’기상론(Meteorologica)‘의 ’가장 달콤하고 좋은 물은 매일 위로 수송되고 수증기로 바뀌어 상층부까지 상승하고, 거기에서 응축되어 지구로 다시 돌아온다‘는 언급은 대기현상을 철학적으로 표현한 예이다. 과학에 대한 자연철학적 해석은 15세기까지 유럽인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주류의 세계관으로 오랫동안 군림하였다. 그러나 16~18세기에 과학은 자연철학에서의 분리되어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과 체계적인 연구로 변화하는 과학혁명을 거치고, 법칙화 과정을 통해 고유한 영역으로 구축되었다. 기상학 분야에서도 관측장비를 이용하여 기상현상을 기록하고, 기록된 자료들로 날씨를 나타내는 지도인 일기도를 활용한 예보가 시작되었다.

19세기는 근대 과학이 시작된 시기이다. 맥스웰의 전자기학, 열역학 등의 등장으로 현대적 의미의 물리학 개념이 성립되고, 유전이론, 진화론 같은 수많은 업적이 이루어지며 과학은 학문 분야로서 한층 성숙해졌다. 19세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20세기에는 기계·전자·전기기술의 발달과 컴퓨터의 발전으로 과학은 비약적 진보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기반으로 기상학 분야에도 수학적으로 대기 움직임을 해석하고 컴퓨터를 이용하여 미래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예보가 등장하였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발달, 수학적 알고리즘을 활용한 복잡한 계산, 메타버스,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고도화가 진행되고 있다. 기상학에서도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수치예보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인 수치예보모델(수치예보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 기상청도 국내 기술로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을 개발하여 2020년부터 예보를 생산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상·기후 환경 변화를 우리나라 특성에 바로 반영하고 문제점 발견 시 즉각적으로 수정·개선할 수 있어, 수치예보기술의 완전한 자립과 지속발전이 가능해졌다. 기상청은 또한 인공지능 기반 예보지원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으며, 향후 더욱 상세한 날씨 정보를 위해 수치예보모델의 해상도가 높아지면 컴퓨터가 수행할 계산량이 늘어날 것이기에 이에 대비하여 양자컴퓨팅과 고도화된 컴퓨터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과 미국 등의 국가들이 과학의 발전을 주도해 왔지만, 반도체, 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과학기술적 성과를 보이는 우리나라도 미래 과학기술을 이끌어나갈 가능성을 충분히 내재하고 있다. 특히 과거 유럽보다 100년 이상 앞서 날씨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측우기를 이용해 날씨 현상을 관측하고 이해하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저력은, 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의 발전와 함께 기상 분야에서 다른 국가들의 발전을 이끄는 프론티어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 기대하며, 이를 통해 기상청은 모든 위험기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체계 구축의 기반을 닦아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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