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철 충청남도교육감

영국의 시인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은 ‘황무지’라는 장편시에서 노래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이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라고.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유럽의 황폐한 모습을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없는 황무지로 표현하고 있지만, 그곳은 우리의 의지와 생명력으로 라일락을 키워낼 수 있는 희망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의 4월은 어떠한가. 우리에겐 비통하지만 기억해야 하는, 아프지만 희망이 담긴 역사가 있다.

1948년 제주 4·3 사건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지역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향한 평화와 인권의 상징이 되고 있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는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키워내야 할 어른들의 의무와 책임,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할 기억 자체가 되었다. 1960년 4·19혁명은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기 위해 시위를 했던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민주주의의 기폭제가 되어 12년간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뿐이던가! 1919년 4월 11일은 3·1운동 정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한 날로 올해가 104주년 기념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공포하면서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가 되었고 ‘대한민국 임시헌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으로 현재 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순국선열의 헌신과 희생 위에 자주독립 국가와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 대한 뜨거운 희망으로 세워졌다.

지난 3월 28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내년부터 사용할 초등학교 교과서 149종을 심사해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검정 확정했다.

‘일본의 고유한 영토인 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라고 표현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식민지하 조선인 징병에 대한 표현을 ‘지원’으로 수정해 마치 조선인들이 전쟁터에 자발적으로 나간 것처럼 묘사하는 등 조선인 징병의 강제성을 무마시키고 있다. 이에 3월 30일 전국시도교육감은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 왜곡에 대해 규탄하고 역사교육과 독도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역사교육을 내실화할 것을 성명서에 담았다.

내게 큰 스승이셨던 친일 연구학자 고(故) 임종국 선생은 "친일한 일제하의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던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고 했다.

영광의 기록만이 아니라 치욕의 기록을 통해 참회와 반성을 해야 다시는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은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비통함으로 가득한 4월의 아픈 역사지만 반성과 참회를 통해 희망을 만들어 냈듯, 일본 역시 잔인한 부끄러움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진정한 반성과 참회를 통해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인류의 역사에 합류해야 한다.

오늘은 4·19혁명 기념비 제막식이 있는 날이다.

제막식이 있기까지 천안지역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4·19혁명 기념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충청남도의회에서 예산을 확정받아 거행되는 만큼 충남도민과 교육공동체의 따뜻한 열의가 4·19혁명 기념비에 담길 것이다.

4·19혁명 당시 자신을 스스로 태워 민주주의 시작의 불씨가 된 11분의 충남 학생 희생자를 불러보노라.

강명석, 고병래, 곽종한, 김영기, 김창섭, 김현기, 노희두, 안부자, 윤지섭, 임기택, 장기성 열사의 함성은 황무지에서도 라일락을 키워냈던 봄비처럼 우리에게는 4월의 봄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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