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전국에 봄비가 내리던 날, 서울의 풍납토성을 홀로 둘러봤다. 1983년 백제 건국의 역사로 석사 논문을 쓸 때 와보고 꼭 40년만이다. 이후 학업은 중단됐고 예정에 없던 언론계로 떠났다. 당시는 "언제든 다시 (백제사로) 돌아오겠다"고 결심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우산을 들고 풍납토성의 발굴 복원지역 설명문을 꼼꼼히 읽고 또 사진도 연신 찍었다. 순간 ‘왜 이러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랑’ 백제를 수십년 만에 만나 들뜬 게 사실이다.

다음 날 10여년간 연락이 끊겼던 경남 김해의 영식이 형에게 전화했다.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시절이 생각나서다. "나는 백제사, 형은 가야사"하며 학업의 꿈을 키웠던 때가 있었다. 궁금증이 풀리지 않을 때 서로 "꿈속에서 온조왕, 수로왕을 만나 건국 얘기를 들어봤으면…"하며 웃기도 했다.

이 모두 지난 6일 한성백제박물관 ‘가야, 백제와 만나다’ 기획전에 갔다가 생긴 일이다. 옛사랑 백제를 만나고, 또 가야(이영식 인제대 명예교수)와 통화를 했다.

기획전을 보는 동안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어? 서울 출토 가야 유물은 한성백제 때 것이 아닌데….’ 정작 가야가 백제와 긴밀히 지낸 건 이후인 웅진(공주)·사비(부여)시기였다. 2년여 전 부여 쌍북리 건물지에서는 대가야 토기가 출토돼 화제가 됐다. 성왕(聖王)은 공주에서 태어나 왕위에 올랐고, 부여로 도성을 옮겼다. 그는 대가야와 연합해 신라복수전을 펴기도 했다. 올해가 성왕이 왕위에 오른 지 1500주년 되는 해다.

1년 9개월 전 연구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놀란 게 있다. 연구원의 핵심 연구 주제에서 백제가 보이지 않았다. 충남 역사를 연구하는 기관으로 당연히 백제를 우선시할 줄 알았다. 원장 부임한 다음 날,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학술대회에서 기념사를 하게 됐다. "35년 만에 역사학도의 길로 돌아왔다"고 했지만 백제사는 이제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천안에 오래 살다보니 왕건·박문수·유관순 등 지역 인물에 몰두해 왔다. 몇 개월간 충남도 공공기관 통폐합 논의에 들썩이다 최근 정신이 들었다. 내년이면 연구원은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박물관을 갖춘 전국 유일의 역사·문화재 연구기관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그 차원에서 연구원의 백제사 연구사를 뒤돌아보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중견·신진 백제사 연구자들을 모시고 오는 25일 귀한 말씀을 들으려 한다. 다음 달에는 김해로 내려가 ‘가야’도 만나려 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