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석·대전본사 편집국 경제부 기자

[충청투데이 박현석 기자] 지난해 이맘때쯤 지역 내 대형 주택건설 현장을 취재차 찾은 적이 있다. 이런저런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득 현장 옆에 쌓인 건설 자재들에 눈길이 갔다.

예전 ‘외지 건설사들은 볼트와 너트까지 자기 지역 생산품을 가져다 타지에서 쓴다’는 타사 선배의 말이 문득 들어 실제 살펴보니 사실이었다. 파이프, 합판이야 그렇다 쳐도 소화기 같은 저관여 상품마저 해당 시공사의 본사 소재지에서 생산된 제품이었다.

이곳은 착공에 앞서 관할청과 대형건축공사장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역 경제 및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시공사는 지역 전문건설업체 하도급, 지역 건설장비와 건설자재 구매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지만 공염불에 그칠 공산만 커진 셈이다.

현재 대전 지역 내 대형 건설현장의 시공권은 80~90% 가까이가 외지, 특히 수도권 건설사가 장악하고 있다.

특히 조합원들의 선택으로 시공사가 결정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에선 브랜드 가치에 따른 집값 상승 기대 심리로 지역 건설사들은 명함조차 내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역 대형 건설현장, 특히 아파트 공사장에선 대전 땅 위에 타지의 건설자재와 장비로 집이 지어지고 있는 모순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대전시는 일찍이 ‘시장은 지역업체에서 생산한 건설자재의 구매·사용 촉진, 지역업체의 장비 사용 촉진, 지역업체가 확보한 건설 신기술 특허 사용 촉진 등에 대해 적극 권장할 수 있다‘는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자생력이 부족한 지역 건설업계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그런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 같은 지역 우선 구매 조례를 불공정 규제로 인식, 개선 추진을 예고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정위는 지자체들이 지역 내 생산 물품 우선 사용 또는 인력 우선 고용을 독려하는 조례를 불공정 규제로 보고 개선 과제 대상으로 분류한 것이다.

사업자 간 자유로운 경쟁을 막아 소비자 이익을 저해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지만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의 그 취지를 살피지 못한 점이 매우 유감인 부분이다.

특히 균형발전을 외쳐온 정부의 중앙행정기관이 오히려 수도권 집중화를 부추길 수 있는 결정을 내렸다는 게 지역 건설업계의 지적이다.

공정위는 연말까지 지자체와 협업해 조례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생산자재 우선 사용률이 전국 지자체 중 최하위권인 인천은 개선과제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지역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지자체의 노력과 취지가 잘 반영된 결과가 도출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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