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 대전사회서비스원 원장

어렸을 적 우리 집의 설날 휴일은 단 하루였다. 노점 일을 하는 집안 형편상 오랜 기간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8남매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떠들다 보면 월세방의 초라함도 단칸방의 답답함도 잊게 했다. 설날에는 동구 대동에 있는 큰집에 모였는데 이때는 평소 먹던 보리밥과 시래기죽이 아닌 흰쌀밥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어린 나이에 설렜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시절 보릿고개 이야기라며 추억의 소재가 되었지만, 그때의 어려웠던 경험은 내가 사회복지를 배우고, 사회적 약자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했다.

시의원으로 지냈던 지난 16년은 설 명절 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찾아 봉사활동을 펼쳤다. 복지관을 방문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눌 전을 부치고 떡을 빚고 김치와 밑반찬을 전달하며 온기를 전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번 설날은 두 자녀와 손주들과 함께 보내며 이야기꽃을 피웠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있을텐데’...여러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사회서비스원 운영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졌다.

코로나 확산 상황이 누그러진 설날을 앞두고 모처럼의 친인척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뉴스와 방송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몇몇 뉴스 키워드가 눈에 밟혔다. ‘혼자여서 더 시린 설’, ‘명절이 더 외로운 사람들’ 등 ‘독거노인’, ‘1인 가구’, ‘고독사’는 설날의 기대감과 비교돼 더욱 쓸쓸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인 가구 수는 716만 5788가구이고, 65세 이상 1인 가구수는 187만 5270가구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대전은 시도별 1인 가구 비중이 37.6%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1인 가구의 증가와 발맞춰 공공의 책임성 또한 커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홀로 거주하는 1인 가구의 경우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를 맺어도 가족과 같은 ‘정서적 안전망’이 없어 고독사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한다. 공공의 돌봄을 책임지는 사회서비스원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 민관이 함께하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지역사회에서 지역민을 돌보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대전시사회서비스원의 직영 시설인 서구종합재가센터에서는 이번 설날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지역 후원자를 통해 기부받은 떡국떡 300kg에 떡국용 부재료를 직접 구매해 독거노인 570가구에 전달했다. 50여 명의 직원들이 명절을 맞이해 가가호호 어르신들께 안부 전화까지 돌렸다. 지역의 자원을 이용해 지역 주민의 돌봄 공백을 예방한 좋은 사례다. 이미 이러한 사례를 활성화하기 위해 대전시사회서비스원은 2020년부터 민관협력 및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위한 플랫폼 역할을 맡고 있다.

시대가 변해 보릿고개 시절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이 있다. 예전처럼 현장에서 이웃과 맞이한 설날은 아니었지만, 공공 돌봄을 책임지는 사회서비스원 원장으로서 대전시민의 따뜻한 돌봄에 대한 책임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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