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연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장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어 ‘한국수어’는 한국어에 이어 두 번째 법정 공용어가 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농인과 한국수어사용자는 한국수어 사용을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며, 모든 생활영역에서 한국수어를 통하여 삶을 영위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수어가 법적 지위를 얻은 것이 6년여 지났지만 이를 아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단일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강조해 온 민족 국가인 우리나라에서‘공용어’라는 개념은 낯설뿐더러,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인 ‘청인’들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산 초기 청와대를 비롯한 행정기관들의 대응에 대해 청각장애인들의 불만이 높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법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인식과 동시 수어통역사 등을 갖추는 등 실질적인 인프라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은 ‘한국 농인의 제1언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수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농인에게 한국어는 비장애인들이 외국어를 배우듯 별도로 학습해야 할 제2언어로 새롭게 익혀야 하는 문자이다. 수화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청각장애인들의 소통도구로 왜 정확하고 쉬운 ‘한글’을 사용하지 않고 표정과 몸짓을 사용하는 수화를 사용하는가에 대한 것이라는데, 바로 한국수어의 특성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 사람이 영어로 되어 있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어나 한글로 통번역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농인은 한국어(한글)로 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수어로 통역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농인으로 태어나는 영유아들은 처음부터 수어를 습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청인 부모들의 경우 농인에 대한 문화적인 이유와 수어에 대한 오해 등의 이유로 수어교육을 꺼리게 되는 경우가 많고, 주변에서 교육을 실시할 전문교사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른 수어 교육을 방해받는다. 이런 환경은 사랑하는 자녀, 가족들 간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 농인들의 사회적 소통을 더디게 한다.

성인 농인이 아닌 영유아 농인을 위한 소통 지원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 중에 ‘베이비사인(Baby sign Language)’이라는 것이 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것은 아기가 엄마, 아빠 등 가족과 보호자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의사소통 도구로, ‘아기수어’라는 우리식 표현이 적당해 보인다. ‘아기수어’란 미국의 아동 심리학자에 의해 고안되어 1990년대 전세계로 보급된 베이비사인을 토대로 만들어진 농인 영유아를 위한 수화다. 다른 신체에 비해 손과 손가락 근육의 발달이 빠른 아동의 특성을 고려하여 말 이전에 부모와 아기의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되는 제스처를 영유아 농인을 위해 고안되었다.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는 충북지역 청각장애인단체와 함께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111개의 ‘한국형 아기수어’를 개발하고 이를 동영상교육자료로 제작하는 사업을 펼쳤다. 이 동영상 교육자료는 인터넷의 공유동영상사이트에서 무료로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동영상과 연결된 QR코드와 사진을 수록한 책자도 발간하여 보급할 예정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세밑을 맞아 생각해 보니 지역과 사회에 센터의 올 한 해 가장 아름다운 공헌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