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어떤 만남은 여운 대신 ‘의문’을 남긴다. 귀갓길에 마침표나 느낌표 대신 ‘물음표’가 떠있다. 분명 ‘좋은 사람’과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뭔가 ‘벌컥’한다. 그래서 이상하다. 그런데 그렇게 의구심을 품는 나 자신이 못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날의 일기가 개운하지 않았던 그 이유를 안다. 그건 그 만남이 ‘가스라이팅 잔치’ 였기 때문이다. 웃긴 건 그 사실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처음엔 몰랐다. 그저 나를 걱정해 주는 말이라 생각했다. 지금 보니 그 만남은 ‘걱정 대회’를 표방한 ‘지배의 시간’이었다. 그래서 찝찝했다. 그래서 불쾌했던 것이다.

☞정말 교묘하다. ‘가스라이팅’은 당한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다. 어쩌면 가스라이팅의 가해자조차 자신의 행위를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 불안함을 파고든다. 나의 불쾌했던 만남도 그러했다. 내 일이 안 풀렸을 때, 나는 가스라이팅까지 당하고 있었다. ‘위로’가 필요했지만 돌아온 건 ‘조종’이었다. 그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네가 걱정돼서 그래",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네가 지금 예민하니 내 말 들어" 물론, 처음 들었을 땐 고마웠다. ‘날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못난 나 자신이 한심했다. ‘내가 지금 정말 이상한 상태구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틀렸고 그는 맞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를 ‘의심’하게 됐고 그를 ‘의지’하게 됐다. 그리고 그게 바로 ‘가스라이팅’이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다. ‘지능’과는 별개다. 결코 날 위한 변호(?)가 아니다. 사회적인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계곡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윤 모 씨도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다. 그는 명문 대학을 나온 대기업의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가해자 이은해에게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해 자존감이 매우 낮았다. 그 끔찍한 괴롭힘은 8~9년간 이어졌다. 윤 모씨는 월급을 이은해에게 다 보내고 반지하에 살았다. 라면이나 생수를 살 돈 조차 없었다. 그렇게 헌신했어도 그는 이은해에게 ‘정신병자’, ‘쓰레기’ 같은 폭언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윤 모씨는 이은해에게 인정을 바란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모든 잘못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기도 했다. 수영을 못하는 그가 4m 아래 계곡물에 뛰어내린 것도 이 선상에 있다. 누군가는 의아함에 "똑똑한 사람이 왜 그렇게 당했냐"라는 무례한 발언을 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스라이팅은 그런 것이다. 피해자는 아무 죄가 없다. 판단력을 흐리게 한 가해자 잘못이다.

☞연예계를 봐도 그렇다. 이승기 사건이 화제다. 이승기는 소속사로부터 18년간 한 번도 음원 수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소속사 대표는 이승기에게 "항상 넌 마이너스 가수다. 네 팬들은 돈은 안 쓰면서 요구만 많다. 넌 다른 걸로 많이 벌잖아. 가수는 그냥 팬 서비스라고 생각해라" 등의 발언을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이승기는 세뇌 당했고 수익을 얻지 못했다. '마이너스 가수'란 말은 사실이 아니다. 노래를 잘모르는 나조차도 그의 히트곡 5곡 정도는 댈 수 있다. 국민은 똑똑한 이미지의 이승기가 속절없이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가스라이팅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똑똑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항상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가스라이팅은 해서도, 당해서도 안된다. 1내가 하는 모든 것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거나 2 너무 자주 나만 사과를 하거나 3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 의심해봐야 한다. 나도 모르게 가스라이팅에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가스에 중독됐을 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지켜야 한다.

김윤주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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