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택 배재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는 다수의 인명피해가 난 대참사가 발생했다. 11월 14일 기준으로 사망자가 158명이고 부상자는 196명이다. 이번 참사는 단일 사고 인명 피해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규모이고, 압사 사고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낸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세계경제 10위권 국가의 수도 서울 한복판, 그것도 불과 40m 남짓한 좁은 골목에서 350여명의 사상자를 낸 너무도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참사 앞에서 국민들은 부끄럽게 울고 있고, 세계인들도 다양한 표현으로 애도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우리 정치권은 참사 책임론을 놓고 남 탓 타령이고 이를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온갖 술수들이 난무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경찰 책임론’을 부각하는 한편 야당은 ‘정부 책임론’을 들고 나와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의 경질 그리고 국정조사와 특검까지 요구하는 입장이어서 이를 둘러싼 여야공방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짓은 남 고통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정치권이 딱 그 모양새다. 희생자 가족과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 한쪽에서는 세월호 때처럼 흘러갈까 노심초사하며 방어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선 세월호 때처럼 흘러가길 바라며 공격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걱정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정의(justice)의 부재, 기준(standard)의 부재라 생각한다. 어떤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무엇이 문제이고, 판단의 기준점은 무엇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남 탓 공방만 있고 진영논리만 있지 합리적 사고를 뒷받침할 원칙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매번 사고 나면 분노하고 공방하고 수습하고 또 잊혀지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정치·행정행태를 지켜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가운영(국민판단)의 정의와 기준이 설계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요하다면 가칭 ‘국가정의국민판단기준위원회’라도 만들어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정치색 배제는 물론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행복을 걱정하는 순수 국민들이 참여하여야 할 것이다. 1~2년 단기작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대를 잇는 지속작업이 돼야 할 것이다. 위기는 기회라 했다. 이번 이태원 사고로 참담하고 비통한 마음 금할 길 없지만, 그래도 정신 차려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재난과 참사 속에서도 국론이 분열되지 않고 신속히 수습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판단을 위한 정의와 기준의 대원칙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해 본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경제부국 문화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가칭 ‘국가정의국민판단기준위원회’의 설립과 운영은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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