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석 해밀초 교장

코로나19 재확산의 그래프도 있지만 이제 일상을 흔들만큼 큰 위험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내년 상반기에는 학교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이렇게 코로나19 이전의 시기를 맞이하는 과정에 있다.

코로나19 이후 다시 학교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가 발생해서야 그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보고서에 의하면 만약 학교가 없었다면 누군가 학교를 발명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 불가능한 학교의 역할을 발견한 것이다. 학교는 사회적 관계를 증진하며 교육과 학습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 원격학습이 학교 활동을 지원할 수 있지만 이러한 관계적 성격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19는 전 세계, 전 분야를 통째로 들어 옮겨놓았다. 회복하는 과정이며, 교육에서도 ‘교육 회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교육 회복을 넘어 최재천 교수가 얘기한 ‘교육 복원’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원래의 목적과 의미를 새기며 다시 재정립하는 교육을 생각한다.

건축가 루이스 칸은 ‘학교는 나무 아래서 자신이 교사인지 모르는 사람이, 자신이 학생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깨달음에 대한 얘기를 했고, 자신이 학생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학교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시대, 내가 깨달음을 얻고, 내 자녀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품은 곳,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

유네스코 보고서에서도 학교는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삶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타인으로부터 배우며 함께 하는 공간이며 서로 돌보며, 새로운 변화를 위한 플랫폼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속에는 개인 삶의 여정도 있지만 또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의 여정을 함께 하는 곳이 학교이며, 이로써 학교를 특별한 시간과 공간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앤디 하그리브스는 학교교육 제4의 길에서 ‘비전과 전문성(참여포함) 그리고 대중의 참여’의 세 꼭지로 삼각형 모형을 안내하고 있다. 비전은 국가 혹은 교육청의 비전 또는 학교 공동의 목표로, 그리고 사회적 삶과 연결시키고자 하는 공적 교원으로서의 전문성을, 대중의 참여는 학부모 포함한 지역사회를 말한다. 세 개 꼭지를 서로 연결시키는 곳, 즉 이 꼭지가 만들어내는 총합으로 학교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학교가 우리 아이들에게 특별한 시간과 공간이 되고, 시간과 공간을 더 확장하여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삶을 만나고,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며 ‘따로 또 같이’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곳이 마을의 발견. 그 자체로서 삶이고, 공동체이고 미래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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