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연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장

올해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576돌 되는 해이다. 우리의 글을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분명히 밝힌 자랑스러운 날이다. ‘국문과’ 졸업생인 글쓴이는 남들과는 다른 자부심을 새삼 느끼는 날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주도하여 훈민정음을 만든 뜻은 조선의 민중들이 그들의 ‘말’을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훈민정음 이전의 우리 조상들은 ‘우리말’을 표현할 고유의 문자를 갖지 못해 중국문자인 ‘한자’를 빌려 쓸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말’과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였음은 당연하였다.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그들의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조선사회가 추구했던 성리학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말과 글’은 민중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이었다. 요즘의 표현으론 세상과의 소통능력을 나타내는 ‘미디어능력’ 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훈민정음 반포의 뜻과 이상이 아무리 높더라도 결국 시대의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것이며 조선왕조의 미래도 우리가 아는 바와 같았다.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를 잘 나타내 주는 미디어가 있기 마련이다. 글쓴이가 20대에 접어들던 지난 세기 80년대에는 그것이 문학, 그중에서도 ‘시’였다. 그렇다면 디지털미디어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시민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최선의 미디어로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에게 최선의 미디어란 자신이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미디어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림’이, 다른 누군가는 ‘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디어센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디지털기술을 활용하여 영상과 라디오 등 방송콘텐츠를 제작하고, 이러한 콘텐츠로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특히 거대 매스미디어인 방송프로그램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적극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의 방송법은 이러한 ‘시청자 참여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의 권리로 제안하고 있는데 미디어를 통한 시민의 표현이 민주주의 제도의 근간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한 시민들의 ‘표현-발언’은 ‘미디어의 공론장’으로서의 기능을 전제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이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도구와 좋은 제도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하여도 사회의 구성원들인 민중들의 의식수준이 이에 이르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훈민정음이라는 배우기 쉽고 우수한 문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한 광복 직후 조선인들의 문맹률은 78%에 육박했다고 한다. ‘마름’을 통해 식민지 민중을 다스리려는 일본제국주의의 의도를 짐작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갑오개혁으로 국가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았지만 ‘천민과 여성들의 글’이라며, ‘우리 글’에 대한 식자층의 천대가 근본 원인임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문맹률이 0%에 가까운 오늘날 한편으로는 ‘문해력’을 걱정하며, 누구나 유투버인 우리 사회는 국민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써 미디어를 활용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갖춰놓았다. 이제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 문자 탄생이 마련해준 한가로운 휴일을 즐기며, 600여 년의 오랜 걱정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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