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은 명예기자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다. 내가 나이를 먹고 자라는 것을 느낄 때에는 큰 감흥이 없다가도 나의 부모님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느낄 땐 슬픔이 찾아오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부모님이다. 이 부분에도 모순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젊었을 때의 부모님은 체력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젊었기에 더 많은 점들을 수용하고 행동해 주었다. 하지만 나이를 들면서 체력적으로도 호르몬의 변화로도 점점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10대 당시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2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가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결국 항상 내 곁에서 내 편은 우리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가보면 이미 늦었어. 라고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미 늦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늦은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보았다.

당연시여겼던 빨래, 밥, 청소 등 한번에 모든 것을 하진 못하더라도 사소한 부분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부모님도 이런 점을 느꼈는지 빈 시간에 자신의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우리아빠의 취미생활은 영화감상이다. 젊은 세대들은 OTT서비스에 대해서 많이 이용하고 있지만 부모님세대는 이런 서비스에 대해서 알기도 어렵고 이용하기도 어려워한다. 우리아빠도 마찬가지였고 나는 티비로 연결할 수 있는 미디어와 넷플릭스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는 듯하다가도 반년이 넘어가는 지금 넷플릭스의 액션장르 영화를 대부분 다 보았으며 이제 미국드라마까지 재미있게 보고있는 아빠를 볼때면 나 또한 행복해진다. 이런것도 효도가 아닐까? 효도에 대해서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이런 사소한 것부터 일상에 대해 함께해 나아가는게 멀리보면 기억에 남을거라 생각한다. 거창한 물질적인 것도 물론 좋지만 사소한 소소한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확행도 좋은 효도가 아닐까. 명예기자 배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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