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지 명예기자

복지관에 근무할 때 지능지수가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었다. 장애 등급 판정은 받지 않았지만, 지능지수가 낮은 사람을 흔히 경계선 또는 경계성이라 불렀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지적장애인과 비 지적장애인의 경계에 있다고 경계라는 단어를 사용했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부른다.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으로 지능지수가 71에서 84 사이로 지적장애인 비 지적장애인 사이의 경계선으로 분류되는 것을 말한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가 평균적으로 낮아 학습 능력, 일 처리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00명 중 14명, 전체인구의 14%가 경계선 지능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 아직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장애인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 개념으로 부모님을 비롯한 학교 선생님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저 노력이 부족한 아이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다. 충남 당진시에 거주하는 이창갑 씨도 20살 때 병역검사를 받는 중 경계선 지능인 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지=아이클릭아트 제공
이미지=아이클릭아트 제공

◆‘내가 왜 경계선 지능인이지?’

경계선 지능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당사자도 의아해 했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맞닥뜨린 것이다. 이후로 경계선 지능인을 부정하며 긴 방황의 터널을 걸었다. 하지만 직접 경계선 지능인 당사자 모임에 나가며 사람을 만나보니 자신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데, 괜히 지능이 낮다고 방황했었던 거예요.’ 이창갑 씨는 당사자 모임에서 힘을 얻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들로 노력하며 조금씩 방황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계속 내디뎌야 한다.

지능지수가 갑자기 높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도 이창갑 씨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책을 읽고 쓰는 형태의 학습을 한다거나 사람을 만나 사회성을 높이는 방법을 꾸준히 행동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충분히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능지수가 경계선 수준에서 평균 수준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래서 꾸준한 노력이 중요하다.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든든한 뒷받침이 필요

경계선 지능은 아직 법적으로 장애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장애인복지법과 같은 제도의 지원 범위에서 빠져있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맞춤형 교육훈련, 직업훈련과 같은 지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조례를 통해 이들에 대한 교육, 치료 지원의 근거를 마련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경계선 지능인이라는 것을 숨기는 경우 제때 치료 받을 수 있는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한 만큼 우리가 모두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약 14%의 경계선 지능인. 법정 장애인의 한 항목으로 만드는 것보다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 함께 나아가야 할 동반자로 생각하면 좋겠다. 그들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잘 내디딜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

한수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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