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회 한서대학교 교수

수 년 전 보름간격으로 돌아가신 나의 부모님은 비록 무학(無學)이셨으나 그 가르침이 틀린 것이 없었다. 첩첩 산골마을의 농사꾼임에도 나의 미술대학 진학을 한 번도 반대하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이번 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늦게 본 아이가 있다. 아이는 또래에 비해 늦게 온 사춘기를 겪으면서 많이 방황하였고 그만큼 나와 아내도 몸과 마음으로 힘들었다. 그런저런 시간이 지나 아이는 고3이 되었고 곧 수시모집 원서접수를 앞두고 있다. 경험상 고3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기회는 언제나 찾아온다.

나의 경험으로, 자식은 중2 때까지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사랑스럽지 않을까 싶다. 그러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2차 성징이 나타나고, 자아를 확립하려하는 이성과 감성의 변화과정에서 자연스레 부모와 의견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시쳇말로 웬수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학과의 박사과정에 있는 중국 학생 중에 부모 된 이가 있어 중국은 어떠냐고 물으니 그곳도 마찬가지로 ‘아이가 커지는 만큼 더 웬수가 되어간다’고 말한다. 어느 나라든 ‘자식은 전생의 빚을 받으러 온 채권자’인가 보다.

얼마 전 TV토론에서 내 연배의 어떤 정치평론가가 말하길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말 할 때 ‘내가 뭘 아나? 네가 알아서 해라’고 하셨는데 우리 세대들은 자녀들에게 ‘내가 알기로는’이라는 전제를 달며 꼰대의 잔소리를 하는데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대부분 지금 90대 초중반으로 제대로 학교를 나오지 않으셨고, 조그만 어려움에도 자식 낳기를 포기하는 지금의 젊은 세대에 비해 해방의 혼란과 전쟁의 고난 속에서도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자식을 위해 무한 희생하시고 교육을 시키셨다. 덕분에 똑똑해진 우리 세대들은 스스로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지 자녀들에게 오만 참견을 한다. 그렇다면 교육받지 못한 부모님 세대들이 우리보다 못한가? 나의 짜잘한 잔소리보다 부모님의 사랑이 훨씬 더 큰 울림으로 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부모 된 입장에서 다시 생각하니 아이의 미래는 아이의 인생에 맡기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나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실 때는 투정하고 나이 값을 못했지만 요즘은 자주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짧은 기도를 드린다. 늦었지만 그것은 나의 생활에 작은 위안이다. 부모은중경은 부모가 아이를 낳고 키우고 돌보며 염려하는 은혜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식들은 나처럼 부모가 돌아가신 이후에야 그 은공을 깨닫고 효를 못 다함에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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