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청주시민대상 사회복지분야 대상 조영미 씨
여행 즐기던 그냥 평범한 가정주부
잘나가던 남편사업 부도 ‘청천벽력’
우울증 덜어내려 무작정 농사 돕기
상품성 없는 농작물 경로당에 전달
한 번 시작하고 나니 두번은 쉬운 일
소문타고 주위 도움주시는 분 많아
돈이 많은 것은 그저 돈만 있을뿐
봉사활동은 삶 자체의 변화 이끌어
내 손이 필요한 곳 있다는 것에 감사
변하지 않고 오래 활동하는 것이 꿈

▲ 지난 1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청주시민대상 시상식에서 조영미(오른쪽) 씨가 이범석 청주시장으로부터 사회복지 시민대상을 받고 있다. 청주시 제공

[충청투데이 심형식 기자] 때는 2006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잘나가던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났다.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 40평대의 넓은 아파트에서 여행을 즐기던 평범한 가정주부 조영미(59) 씨는 청원군 남이면의 13평 작은 아파트로 남편, 막내와 함께 이사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던 시절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무작정 시작한 등산길에서 본 농사일. 모든걸 잊기 위해 시작된 고행은 그를 청주의 자원봉사왕으로 이끌었다. 지난 1일 제9회 청주시 시민대상 시상식에서 사회복지 부문 시민대상을 받은 조영미 청주시 남이면 지역봉사대장으로부터 봉사왕에 오르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엄청난 봉사활동 실적으로 화제가 됐다.

"2006년부터 봉사활동인줄도 모르고 그냥 시작했다. 몇 년 후 자원봉사센터가 있고 자원봉사 시간이 기록된다는 것을 알았다. (청주시자원봉사센터에 기록된 조 대장의 봉사실적은 2010년 10월 7일부터 2022년 4월 30일까지 활동시간 1만 1380시간 30분, 활동횟수 3604회) 봉사활동은 주로 농촌에서의 생산적 일손봉사, 마을 주변 청소, 제설작업, 환경정화, 독거노인 사랑의 반찬 나누기, 코로나19 예방접종 봉사 등 다양하게 했다. 자원봉사 교육에도 빠짐없이 참석해 진정한 자원봉사자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남편이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났다.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남이면의 한 아파트를 대물로 받아 이사왔다. 13평짜리 아파트로 준공도 나지 않아 많은 것이 불편한 곳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는데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주위에서 밥 값 내지 않아도 되니 만나자고 했지만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사업이 어려워지기 전에는 여행을 즐기는 평범한 주부였다. 역시 우울증이 왔다. 사람도 만나지 않고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는데 집이 좁아 집에서도 할 것이 없었다. 무작정 집 뒷산으로 등산을 갔다. 몸이 피곤해져야 생각이 없어졌다. 등산하고 내려오던 길에 밭이 있었다. 많은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냥 가서 농사일을 돕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보셨다. 돈도 받지 않고 일을 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이상했을 것이다. 가지를 수확하고 있었는데 상품성이 떨어지는 가지는 버리셨다. 상품성은 떨어지지만 먹을 수는 있는 가지였다. 버려지는 가지를 모아 아파트 내 경로당에 가져다 드렸다. 어르신들이 고맙다고 너무 좋아하셨다. 나쁜 생각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일을 했고, 그저 버려지는 채소를 전달해줬을 뿐인데 주위에서 좋아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봉사활동의 분야가 다양한데.

"한 번 시작하고 나니 닥치는대로 하게 됐다. 살고 있던 아파트 준공 검사가 나지 않아 여러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아침에 차들로 혼잡했다. 막내가 학교에 다니게 됐는데 녹색어머니회에 가입해 아침마다 교통정리를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녹색어머니회 자격이 없어지는데, 그냥 계속 교통정리를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주변에 일이 보이면 닥치는대로 했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 어려운 분들이 많이 사셨다. 겨울에도 어르신들이 전기장판 하나로 버티셨다. 나름대로 프로젝트를 하나 만들었다. 3개월 겨울나기 계획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나마 경로당은 난방을 하니까 어르신들을 경로당에 계속 머무시게 하는게 목표였다. 점심은 어르신들끼리 당번을 정해 하시게 했고, 저녁은 매일 직접 가서 해드렸다. 쌀은 경로당에 있는 것을 사용했고, 반찬은 농촌일손돕기를 하며 얻은 채소들로 해결했다. 경로당에서 점심, 저녁이 해결되니 어르신들이 추운 겨울에도 오후 10시까지 경로당에 머무셨다. 겨울나기 프로젝트에 성공한 후 여름나기 프로젝트를 하려고 보니 경로당이 좁아 남자분들이 못 들어오셨다. 청원군청을 쫓아가 건축도면을 보니 원래 경로당 크기 보다 작았다. 나머지 부분을 돌려받고 청원군에서 예산을 지원해 줘 남자분들과 여자분들이 같이 경로당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생산적 일손봉사에서 많은 인력을 동원하고 있다. 비결은.

"처음 시작한 봉사가 농촌 일손돕기였는데 2016년 생산적 일손봉사라는 제도가 생겼다. 하루에 4시간을 근무하면 교통비 조로 2만원을 관에서 지원해줬다. 봉사활동을 하며 여러 단체장들을 알게 됐는데 그 분들을 통해 남이면으로 생산적 일손봉사를 와달라고 요청했다. 생산적 일손봉사라도 도심의 봉사자들이 시골까지 오려면 불편함이 있다. 저한테 들어오는 지원금을 다 쓰자는 생각으로 아침식사로 누룽지를 준비했고, 점심도 칼국수를 해줬다. 남이면으로 생산적 일손봉사를 가면 좋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음에는 10~20명이 왔었는데 나중에는 90~100여명이 매일 모였다. 서투른 일솜씨에 생산적 일손봉사를 꺼리던 농민들도 봉사자들이 꾸준히 오면서 농사일에 익숙해지자 반겨주셨다. 사업 초기 1농가의 지원만 가능했지만 4~5농가까지 지원할 수 있게 됐다. 2021년에는 남이면에서 총 170회의 생산적 일손봉사를 실시했고 410명이 참여했다. 봉사활동에도 기획력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계기였다. 지원하는 농가도 순서를 정했다. 재난위기가정, 독거노인, 여성농가, 다문화 가정 순으로 지원 순서를 정했다."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봉사활동이 소문이 나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생기게 됐다. 집 앞에 몰래 반찬거리를 놓고 가거나 식재료들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다. 일단 받기는 다 받아서 경로당으로 옮겨 놓는다. 땅을 빌려주신 분도 있었다. 석실리 이장이 자신의 자투리땅을 이용해 보라고 하셔서 지역봉사대가 직접 배추를 심고 재배해 수확했다. 약 6000포기의 배추로 김장을 담가 서원구 11개 면·동의 어려운 분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봉사활동 할 시간에 경제 활동을 하는게 낫지 않나.

"돈이 모든 것은 아니다. 예전 돈을 많이 써 본 적도 있다. 돈이 많은 것은 그저 밖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니는 것 이상, 이하도 아니다. 돈이 있을때도 노는데 열중했던 것 같다. 봉사활동은 삶의 변화를 준다. 돈 보다는 많은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게 좋다. 내 손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변화된 부분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생활을 하다 제일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어려워지니 살고 싶은 의지도 없어지고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예전의 삶을 잊기 위해 등산과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내 형편을 남에게 알리기는 싫었고 잊기 위해서는 내 몸을 힘들게 해야 했다. 그래서 농사일을 도우면서도 돈을 받을 수 없었다. 잊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 고마웠다. 몸을 힘들게하고 더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비로서 내려놓아졌다.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잊을 수 있는 기쁨을 느낀 후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시 예전처럼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앞으로의 계획은.

"요즘 자꾸 목소리가 커져서 불안하다. 열심히 활동을 한다고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상하게 볼 수 있다. 자원봉사를 오래하면 다른 봉사자들을 주도하게 되고 뜻한바와 다르게 오해를 받기도 한다. 초심을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 주문을 걸고 있다. 보다 낮은 자세로 앞으로도 오랜시간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형식 기자 letsgoh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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