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학회 한서대학교 교수

근대시대 미술에서는 형태의 근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유달리 많았으며 그 노력의 결과물도 적지 않다. 형태의 근본을 연구해 괄목할만한 결과를 내놓은 대표적인 작가는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등으로 볼 수 있다. 이들과는 형태에 대한 접근법이 달랐지만 예술형상에 대한 관점의 근원적 전환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으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있다.

뒤샹과 연관된 단어로는 부정을 의미하는 다다이즘(Dadaism), 기성품을 예술에 인용하는 레디메이드(Ready-made) 등이 있으며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 남자 소변기에 ‘R. MUTT 1917’이라는 자신의 싸인 외에는 어떤 조작도 하지 않은 ‘샘’이란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예술작품이 예술가의 장인적 솜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지적선택에 의해 지위를 갖게 됨을 확고히 증명하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가에 의해 선택돼 예술로 전환되는 사물을 오브제(Object)라고 부른다.

사람이 사물에 대해 감지하고, 감응하고, 생각하게 되는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사물의 속성, 관념 등 규정된 성질에 의해 영향을 받기 마련인데 사물의 기존 성질을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조형사고의 순수한 오브제로 전환시킨 뒤샹의 미에 대한 성찰은 위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Object가 사물의 영역을 넘어 ‘생명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현상학과 예술의 차원을 넘어설 수 있다. 그의 생각은 ‘사물은 보는 사람의 의식작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20세기 초의 현상학에 닿아있으며 칸딘스키의 점·선·면에 대한 조형사고처럼 동양적 사유와도 닮았다. 현대예술의 도전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로 아방가르드(Avant-garde, 전위예술)가 있다. 이 말은 군대용어로 ‘선발대’를 뜻하는데 ‘앞서 나아감’, ‘진보’ 등의 의미를 가진다. 기존관념에 대한 강력한 부정의 미학을 견지하는 다다이즘은 아방가르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방가르드나 다다이즘이 제시한 그 길은 예술가들에게 예술은 언제나 앞서 가야한다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여 현대예술가들이 창작이라는 굴레에서 허덕이게 만든 원흉이기도 하다.

석가모니는 ‘세상의 모든 상은 헛된 것(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며 정해짐 없는 무상(無相)을 강조했고, 나의 스승이신 최종태 선생께선 ‘아름다움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찾아가는 것’이라 하셨는데 부처의 깨달음과 정해지지 않은 아름다움의 탐구과정은 서로 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번에 조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소설까지 써가며 새로운 조형을 찾아 걸어온 결과물을 가지고 열세번째 작은 개인전을 갖는다. 헌데 60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망을 헤맨 결과물만 보여주는 것 같아 멋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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