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연 충북시청자미디어센터장

자신의 상식과 다른 현실을 만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현실이, 영화나 소설보다 더 재미있다’라는 표현이 있다. “현실이 소설보다 재미있다” 보니 ‘픽션의 세계를 다루는 책들이 잘 안 팔린다’며 도서시장을 걱정하는 기사를 보게 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말의 기원이 무엇인지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의심이 많아 ‘있을 것 같지 않은 현실을 마주한다면 그것은 이상한 일이고 의심해봐야 할 일이지, 재미를 느낄 일인가’ 라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읽은 책을 또 사게 되는 기억력 때문에 글쓴이는 몇 년 전부터 읽은 책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있다. 독서목록이라곤 베스트셀러들과는 무관하고 깊이 있는 독서평을 남길만한 재주는 없으니 단순히 읽은 책을 잊지 않기 위한 개인적인 곳인 셈이다. 당연히 하루 평균 2명 꼴로 방문객이 찾아오는 곳이니, 어디에 내세울 만한 거리도 못되는 곳인데, 최근 어느 날 하루 방문자가 139명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 상식과 다른 경우이니 분명 ‘소설처럼’ 즐겨야겠지만, 의심이 발동해 관리자페이지를 통해 이유를 찾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요즘 사회에 만연한 ‘혐오정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도 다뤘고 기회가 있으면 되풀이하고 있으니 ‘반이성적인 주류’에 대한 나름의 작은 몸짓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최근 읽은 책 중엔, 한국사회의 ‘중국 혐오’를 다룬 책이 있다. 저자는 사회에서 10여 년 사이에 벌어진 중국 혐오의 원인과 유통경로를 비판적으로 진단하고, 중국 혐오가 단순한 ‘놀이’가 아닌 파시즘적 ‘유사인종주의’임을 경고하는 책이다. 전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인 ‘샌프란시스코 체제’와 자본주의의 위기를 새로운 시장 확대로 돌파하려는 미국의 ‘키신저시스템’의 동상이몽에서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택한 미국의 전략적 목표가 최근의 ‘중국 혐오’의 발흥을 이해하는 키워드라는 주장이다. 이제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규모인 사회가 세계적인 흐름에 반하는 ‘신냉전체제’를 선택할 것인지 ‘다자주의’를 선택할 것인지를 국익의 관점에서 묻는 책이기도 하다. 평가는 세계체제적 관점에서 한중관계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해 준 훌륭한 책이었다. 심지어 ‘비판적 미디어읽기와 중국 혐오’라는 주제의 강연자로 초청할 생각으로 강연장을 찾기도 했다.

책은 만족했지만 700여쪽에 다분히 논쟁적인 제목의 이 책은 한국 도서시장의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출판사의 힘든 결정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소설보다 재미있는 현실이란 이런 것. 나의 블로그 방문자가 70배 늘어났던 그 날, 날마다 보수유투버들이 그의 사저에서 시위한다던 전임대통령이 SNS에 바로 그 책을 언급했다. ‘책 내용에 대한 동의나 지지가 아닌’, ‘다양한 관점’을 위한 그 분의 추천이 낳은 결과는, 해당 도서 품절, 진지한 독서평은 없는 인터넷 찬반논쟁, 이름 없는 나의 블로그 방문자 70배 폭증 등등이다. 이 사태를 목격한 글쓴이로서는 재미도 의심도 없는 짜증일 뿐이다.

오늘 글쓴이의 블로그 방문자는 4명되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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