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범 前 충남지식재산센터장

당진은 평야지대로 유명하지만 내가 태어난 잣티 마을은 첩첩산중 산골이다. 우리 조상들은 600여 년 전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대대로 살았으니 필자가 시골생활에 익숙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1986년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36년이 된 지금까지 텃밭과 자갈논 서마지기 농사를 계속했다. 동네 사람들은 "나오는 것도 없는데 그 힘든 농사를 왜 짓느냐?"고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이 있는 나는 농업 경영체 등록이 안 되기 때문에 어떤 보조금도 받을 수 없어 더욱 그렇다. 그때마다 필자는 "땅을 묶일 수도 없고 남 주기도 아까워 힘들어도 그냥 한다."고 말해왔다. 일가의 한 아저씨뻘 되는 분이 한번 진지하게 물어왔다. "왜 농사를 짓느냐?"고, 그래서 "농삿일하는 그 시간은 내 조상님과 대화하는 시간이다."라고 답하니 우리 집 사정을 잘 아는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모든 농부들이 다 그랬겠지만 특히 가난한 우리 집은 땅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벼한 포기라도 더 꽂으려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나무에 바퀴를 달아 리어카를 만들어 손바닥만 한 열두 다랭이 논을 삽질로 하나로 만들었다. 논 다랭이 밑을 열심히 파서 두 뼘 남짓 땅을 넓혀놓은 할아버지는 인범이 쌀밥 한 그릇 거리를 더 만들어 놨다고 좋아하며 웃으셨다. 모내기를 하다가 깨진 유리병에 찔린 어머니는 아픈 줄도 모르시고 광목천으로 발을 감고 일하시면서 넓어진 논을 바라보며 흡족해하셨다. 2006년경인가.

필자는 아산시 도고면에서 면장으로 근무했다. 어느 날 화천리라는 산골 마을에서 경운기로 밭을 가는 한 노인을 뵙게 됐다. "어르신 힘들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니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신다. 이장님은 이분 연세가 86세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는 것처럼 번쩍 뛰는 그 무엇이 있었다. 늙어도 할 수 있는 일, 늙어도 이 사회에 빚을 지지 않는 일, 늙어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일, 그것이 바로 농사로구나! 노후설계를 잘해야 퇴직 후 노년이 행복하다는 수많은 강사들과 책들이 있지만 나는 귀담아듣지도 읽지도 않았다. 퇴직 전에 공무원연금 공단에서 하는 퇴직자 노후설계 교육도 가지 않았다.

2022년 4월 30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센터장 3년 임기를 마친 필자는 봇짐 하나를 낡은 승용차에 싣고 표연히 나섰다. 그리고는 선산에 올라 신고한다. "저 비록 말단관리지만 이제 마치고 돌아왔습니다."라고, 퇴직 후에 바라보는 전답은 이전의 전답과는 전혀 새로워 보였다. 이게 진정한 내 삶의 전부구나 생각하며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 읊조리는 호사를 누려본다. 귀거래혜(歸去來兮) 자, 돌아가자. 전원장무호불귀(田園將無胡不歸)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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