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전지역본부장

불효자는 아니올시다/설움에 북바처 원망한것 뿐이올시다/하늘과 땅이 모두 나를 버렸을까요?/남달리 어데가 못낫길래/이렇게 헐벗고 주려야 합니까?/죄라면 그저 살고픈 욕망뿐이올시다/(후략)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며 시설에서 보호 받으며 생활하던 한 고아의 자작시 일부분이다. 몇 구절만 읽어보더라도 전쟁의 참화 끝에 남겨진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고달프고 애처롭게 느껴진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이념의 대립과 갈등 속에 남한에서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곧이어 터진 한국전쟁은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참전 사상자는 물론이거니와 약 천만 명의 이산가족 그리고 십만 명 이상의 전쟁고아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로서는 국가재건조차 외국원조를 기대하던 시절이니 부모형제와 헤어지고 거처를 잃어버린 전쟁고아들은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에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KAVA(Korea Association of Voluntary Agencies)와 같은 외국민간원조단체의 한국 아동지원이 본격화되며 아동들은 희망의 끈을 이어 갈 수 있었다. 특히, 입소 아동들은 시설종사자들의 희생과 노력이 더해져 적어도 굶주리지 않고 교육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장과정에서 또래들과 비교되며 느껴지는 빈자리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2년을 맞이한다.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비록 직접적인 전쟁으로 야기되는 빈곤과 기아·질병은 아닐지언정 아동들을 둘러싼 사회 환경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아동들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고 코로나 상황을 지나면서 양육시설의 보호를 받는 아동이나 신(新)빈곤 가정의 아동들은 불안과 우울수준이 상당히 올라갔다. 더욱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돌봄과 경제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자기 봇짐 정도는 들춰 매고 피난길에 올랐던 아동들은 지금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이 되었다. 청·장년기를 나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국가를 위해 가족을 위해 버티고 버텨낸 세대들이다.

숨가쁘게 살아온 선배세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이후세대 만큼은 가난하지 않고 끼니 걱정 안하는 세상을 물려주자 그리고 건강하게 하고 싶은 공부는 할 수 있는 나라를 물려주자 아니었을까?

정녕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일까요?/사랑만이 한없이 그리운/염치없는 애처로운 고아올시다. 로 전쟁고아의 시는 끝맺음을 한다. 아직도 초년의 인생이 힘겹고 출발선이 다른 아동들이 존재하고 있고 제각각 느끼는 빈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정(情)이 그리운 아동, 치료받고 건강해야 하는 아동, 교육의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기를 원하는 아동들이 그러할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각자의 일상에서 한 번 더 보듬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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