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우 배재대학교 문화예술대학 학장

작가로 살아오면서 나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손을 푼다. 가볍게 스케치 하듯 크로키를 먼저 한다. 손을 풀기엔 크로키만큼 좋은 게 없다.

연필로 크로키하면 연필에서 나는 "사각 사각" 소리까지 매력적이다. 그림하기 전 나만의 의식처럼 되어 버렸다. 지우개 사용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림을 배우는 학생들이 아니고서야 회화를 하는 작가에게 지우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림 그리던 형이 밤낮 지우개를 잃어버려서 동생에게 찾아오라고 시키는데 동생이 그러지 말고 지우개를 연필에 달아서 사용해 쓰자, 라는 아이디어로 지우개 달린 연필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회화적인 선은 깔끔하게 지워내지 않아도 된다. 한 몸이 되어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하는 사람들 심리엔 기억과 흔적 지우기를 동시에 하나보다. 어느 작가의 말을 빌리면 연필은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있고 지우개는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있다 했으니 지우개 달린 연필을 보면 인생 같다고 했다.

나이 들수록 흔적을 지우는 일이 많은 것일까? 어쩌면 기억이 흐려져서 지워지는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닐까?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전시를 하는 작가에겐 아직도 남겨야 할 것들이 많다.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고 싶어서다. 그 흔적은 창조된 결실이다.

지금도 나는 일을 마치고 학교 연구실에서 작업을 한다. 늦게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도 그림 하는 지도교수 모습 탓인지 말없이 지켜보고 늦게까지 함께 그림 한다. 교육이 뭐 거창한 게 아니다. 교육은 따라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그리면 학생들도 보고 작업을 한다. 캔버스에 자신을 담는 것이다.

늦은 시간 학교에 있는 내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다음 달에 있을 개인전 준비로 연구실 복도까지 그림으로 한가득하다. 통행에 문제가 될까 싶어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덕분에 학생들은 지도교수의 그림을 원 없이 보고 있다. 원 없이 그림을 익힌다. 어린 초록이들이 5월을 가득 충만했고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6월에도 계속 그려가게 될 나만의 이유다.

개인적으로 오는 7월 시작을 알리는 날부터 대전 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한다. 대전에서 모처럼 오랜만에 하는 개인전이다 보니 준비를 철저하게 하려고 한다. 새롭게 변화된 그림세계가 나에게는 물론 중요한 기록으로 남겨지길 바란다. 나는 죽을 때 까지 그림을 그릴 테고 앞으로도 손 풀기 크로키는 계속 해 갈 것이다.

"사각 사각" 늦은 시간 아름다운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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