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범 前 충남지식재산센터장

1981년 12월 초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의 겨울은 매서웠다. 신병교육을 마치고 전방 GOP로 투입되기 위해 37연대 어느 내무반에서 필자는 5명 동료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무반 건너편 침상에는 개구리복을 입은 제대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신참과 갈참이 복도를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이 우리를 보고 "너희 어디 병력이야"라고 묻는다. "충남입니다." "충남?, 그럼 A멍이네, 그럼 너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멍을 복창한다. 시작! "멍·멍·멍·멍·멍", 그들은 재밌다는 듯이 낄낄거린다.

어딜 가나 충청도 사람은 멍청하단 소리를 듣는다. 대부분 말하기를 멍청도 사람이라고 그런다. 약고 빠릿빠릿하지 못함임이라.

"아버지 돌 굴러 가유"하면 말이 끝나기 전에 돌이 아버지를 치였다는 비유는 모르는 사람 없이 유명하다.

그렇지만 충(忠) 자가 말하듯이 충청도 사람들의 인성은 대체로 성실하고 충성스럽다. 전국 8도에서 모인 사람들이 모임을 구성하면 대부분 회장은 경상도나 전라도 사람들이고 총무는 충청도 사람 몫이다. 그러니 늘 2인자이거나 추종하는데 만족하고 앞장서는 데는 주저한다. 충청의 이미지는 글자 그대로 중심(中+心=忠)으로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하기도 하지만 ‘충청인의 심성이 늘 중심에 있고 치우치지 않는다.’라는 말도 된다.

충청의 캐릭터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이다. 특히, 외세에 항거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충청도에 많다. 이순신 장군, 김좌진 장군, 윤봉길 의사, 유관순 열사, 만해 한용운 등 모두 국가에 충성할지언정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핫바지다. 핫바지론의 창시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다. 뛰어난 인품과 역량을 갖췄건만 2인자에 머물러야 했다.

이 핫바지론 때문에 시중에는 ‘바지사장’이라는 새로운 명사가 탄생했다. 아무런 실권이 없는 껍데기 사장을 일컫는다. 언젠가는 국어사전에 등재될 것이다. 이런 핫바지 충청도에 언제부턴가 충청 대망론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사실상 경상도 사람의 전유물이었던 대통령을 충청도에서도 내보내자는 것이다. 여기에 부응하듯 윤보선 대통령 이래 많은 분들이 대통령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김종필, 이인제, 이회창, 안희정이 그들이다. 권모술수에 당했지만 그들은 선비답게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나 대망이 여기에서 그쳤다면 충청도는 그냥 핫바지다. 또 하나의 덕목은 조롱과 비아냥거림에도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아는 가슴 뜨거운 충청도 핫바지다. 그래서일까 충청인의 여망인 충청 대망론이 이뤄졌다. 마침내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간이 지나고 때가 온 것이다. 사람에 충성 못하고, 약지도 못하고 우직한 핫바지가 국민의 손에 이끌려 대통령이 된 것이다.

노련한 정치꾼도 아닌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언행일치다. 공정과 상식, 자유, 시장경제, 헌법, 법치주의, 그리고 ‘오로지 국민’이다. 필자의 비약일지는 모르겠으나 국민은 그가 충청도 핫바지 출신이기 때문에 이 말들을 믿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윤 대통령이 평소의 주장과 소신대로 나라를 이끌 거라 믿겠지만 특히 충청 사람들에게는 그가 그들의 아바타이기 때문에 더욱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소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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