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회부의장

명 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린 박희태 전 국회의장. 박의장은 자신이 두 가지 지적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폭탄주다.

"강원도에서 검사장으로 일할 때 기관장 회의에 참석했어요. 군사정권 시절이라 지역 사단장이 술 자리의 좌장 역할을 했습니다. 이 사단장이 맥주 잔에 양주를 가득 채워서 한잔씩 돌리는데 술 약한 사람은 첫 잔에 쓰러졌어요.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습니다. ‘술이 너무 세서 도저히 못마시겠다. 맥주 잔에 양주 반, 맥주 반씩 담아서 돌리자’ 그게 폭탄주의 첫 출발입니다"

1996년 4월 총선에서 139석을 획득한 신한국당은 마구잡이 야당 의원 빼오기로 원내 과반의석을 달성했다. 야당의 비난이 이어지자 박희태는 이렇게 응대했다. "야당의 주장은 내가 바람을 피우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이다" 내로남불의 탄생이다.

지난 5년 지긋지긋하게 들은 내로남불의 반대말은 뭘까? 그건 아마 역지사지(易地思之)일 것이다. 서로 자기 고집만 하지 말고, 입장 바꿔서 생각하자.

제자 자공이 "제가 평생동안 실천해야 할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

예수님 역시 비슷한 가르침을 주셨다. "무엇이든 남이 그대들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대로 그대들도 남에게 해주어라."

2020년 4월 총선에서 180석을 얻은 민주당은 ‘국회 운영은 우리 마음대로’를 선언했다. 국회의장을 차지하고, 야당 몫이었던 법사위원장을 뺐고, 상임위원장을 전부 자신들이 차지했다.

"2008년 총선에서 이명박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했지만, 우리는 법사위를 포함해서 더 많은 상임위원장을 야당에 주었다"

"2004년 이후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한 당이 가진 적이 없다. 국회 내부의 견제와 균형도 중요하다. 이건 의회주의의 파괴다"

야당의 거센 항변에 민주당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막무가내였다. 나는 거기에 항의해 우리 당 몫으로 배정된 국회 부의장 자리를 거부했다.

1년쯤 지나서 민주당이 슬그머니 당초 합의했던 상임위원장 자리를 우리에게 돌려주었다. 그러고는 ‘2022년 6월 하반기 국회에서는 법사위원장을 국민의 힘에게 준다’고 각서를 썼다. 반성문 쓰고 각서까지 쓴 셈이다.

그 각서를 쓴 민주당의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과 박홍근 원내대표가 얼마 전 ‘죽어도 법사위원장을 갖겠다’고 선언했다. 거기에다가 국회의장까지 차지하겠다면서 곧 국회의장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한다.

민주당의 내로남불 폭주는 멈출 기미가 없다. 오늘(20일) 한덕수 총리 인준 표결이 있다. 민주당은 내로남불과 반지성의 구태를 버릴까?

민주당 분들에게 묻고 싶다.

"2024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국민의힘이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가져도 좋은가? 역지사지가 그렇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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