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우 배재대 문화예술대학장

또 다시 찾아온 봄.

나의 겨울잠은 깨어날 줄 모르고 봄이 왔어도 모르고 지내다가 꽃이 지천에 만발해서 꽃이 지고 난 다음에야 ‘봄이 왔구나~~’ 했으니까 말이다.

꽃을 보고도 꽃으로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꽃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마음에 멍을 만들어 버렸다. "내가 이리 멋이 없는 사람 이였던가?"

봄이 지나가려고 떨어지는 꽃비에 알았으니 말이다.

봄날은 간다.

나는 애써 외면하고 무덤덤해지는 적응을 피한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꽃이 지지 않았을 곳을 찾아 운전해서 가본다. 그래도 못내 아쉬워 옥천 나무시장에 가서 나무도 꽃도 실컷 보고 왔다. 그래도 남은 헛헛함에 꽃나무도 사고 나무도 사서 시골작업실에 심고 나니 새롭게 내게 다시 봄이 찾아왔다. 물론 의미부여에 나를 위한 위안 이였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나는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지면 일을 더 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일만 하느냐고들 한다. 이즈음 되면 나를 보는 사람들도 걱정을 하니 일에 중독이 되었나보다. 그러다보니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모르고 느끼지도 못한 채 일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나보다.

브레이크를 스스로에게 걸어둔다.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생각이 많아진 것일까? 환갑을 넘기고도 이렇게 마음의 여유 없이 지내고 있으니 나는 분명 잘 살고 있진 않은가 보다.

나이만 들어가는 것 같다. 앞으로는 내 나이가 주는 아름다움을 갖고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림으로 밥을 벌어먹기로 결심하고 생활한지 40년이 넘었고 그 결심이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규칙적으로 작업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살아요."

"나는 그림을 그려서 살아요." 는 큰 차이가 있다.

앞 문장은 취미로 그림을 쓰며 산다는 느낌이고 뒷 문장은 그림을 그려 가면서 살아가는 뉘앙스 차이가 느껴진다. 생각은 행동으로 이어질 때 욕심이 아닌 것이다.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은 채 생각 만으로만 이루려 하는 것이야 말로 욕심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분명 욕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내 일에 충실하고 행동해 왔지만 무리가 되면 안 되겠다.

내가 가는 길이 건강하지 않은 모양새를 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니까….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