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전지역본부장

아동복지현장에서 일하며 시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 후원자가 있다. 10년 전인가 여고생들이 불우한 아동을 돕고 싶다며 사무실을 찾아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교내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아동권리 인식개선을 위한 팔찌를 제작하여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팔찌 옆면에는 ‘With Tiny Caring Forward Precious Children (소중한 아이들을 향한 작은 보살핌)’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이 이런 캠페인을 기획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였고 취지가 너무 기특해서 사업에 대한 소개와 좋은 의미의 문장이니 언젠가 기회가 될 때 꼭 활용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훗날 필자는 해외 빈곤아동지원을 위해 아프리카 국가를 방문했을 때 현지 아동들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방명록에 이 문장을 남겼다. 몇 해가 지나 후원자 초청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기획할 때는 이 문장을 무대 배경 타이틀로 장식하며 그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도 작은 실천을 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여고생들의 소망처럼 한 명 한 명 소중한 아이들을 향한 보살핌에 적극적이었을까? 고리를 끊기 힘든 빈곤의 대물림, 아동대상 착취와 폭력, 통학로 안전사고 그리고 이맘 때 어른들의 무책임과 부주의로 인한 대형 참사의 아픈 기억까지…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고 악순환을 끊기 위한 민·관의 협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과 제도를 계획함에 있어 아동 최우선의 원칙의 기조를 세우고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어떤 개선책을 원하는지를 당사자에게 묻는 공식적인 상호작용도 많아지고 있다.

어린 시절 손꼽아 기다리던 5월 5일 어린이날이 곧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 제정 초창기에는 어린이들이 농사와 공장에 동원되어 고된 현실을 살고 있을 때였으니 인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이었다. 이외에도 우리 사회는 계속해서 어린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지속해왔다. 1957년에는 어린이의 권리와 복지, 바람직한 성장상을 제시하며 국가·사회·가정이 책임져야 할 기본 요건을 담은 어린이헌장을 제정했고, 1988년 개정을 통해 새 시대 새 어린이상을 명시하였다. 그 후 2007년 어린이선언, 2012년 어린이행복선언, 2015년 어린이놀권리선언을 발표했고, 2016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잘 실천하고 아동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아동권리헌장도 선포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내일만큼 빛나는 우리’라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국가 책임을 더욱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는 출발선이 달라 기회를 얻지 못하는 아동도 있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또 다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아동들도 있다. 그러므로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다양한 성장 환경에서 제대로 보살핌을 받고 있는지 세심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엿한 사회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을, 어쩌면 이미 엄마가 되었을 그때의 여고생들이 남긴 한 줄의 메시지가 더욱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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