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 인력개발실 행정실무원 김유진

ETRI 인력개발실 행정실무원 김유진
ETRI 인력개발실 행정실무원 김유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라는 소설 속 ‘스펙트럼’이라는 단편은 외계인을 처음으로 조우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주항공 분야 연구원인 주인공 ‘희진’은 탐사 대원으로서 우주선에 올라탔다가 외계 행성에 표류돼 실종된 지 40년 만에 구조된다. 그 긴 시간 동안 희진은 언어나 외양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외계생물체 ‘루이’에게서 보호를 받는다. 루이는 다른 외계 생명체들의 공격으로부터 희진을 지켜주고 자신의 언어 도구인 그림을 통해 희진과 소통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희진 역시 루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외계 생명체 탐구라는 본연의 목적과는 달리 서로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친밀감을 공유한다. 그리고 4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 구조 끝에 지구로 돌아온 희진은 외계 행성의 위치나 생명체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그곳에서 교감했던 루이와의 추억을 간직하는 모습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외계 생물체 탐사가 목적이었던 연구원임에도 희진이 자신이 직접 마주한 외계 생물에 대해 함구한 이유는 루이에게서 느꼈던 ‘선함’ 때문일 것이다. 우주항공 분야에 대한 학구적인 소명보다도 낯선 환경 속에서 느낀 뜻밖의 선량함에 더 큰 가치를 둔 것이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선함을 기반으로 탄생한 과학기술이라면 소설 속 ‘루이’만큼이나 따스하게 우리의 곁을 보호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필자는 선함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ETRI의 연구과제들에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됐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트레스 관리 플랫폼과 촉각 음정 시스템을 활용해 악기의 음정을 청각장애 관람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기술 등은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선한 과학기술이다. 필자는 지난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주최한 ETRI의 ‘AI for Good’이라는 웨비나를 본적이 있다. 최근 쏟아져 나오고 있는 AI를 주제로 다양한 융합혁신기술들이 우리에게 어떤 선한 영향력을 주는지 알 수 있어 유익했다. 드론을 이용해 물건을 배송하는 기술, 지하 인프라에 대한 관리, 산불감지 기술, 비디오를 이용한 감시 기술, 운전석이 없는 무인차 ‘오토비’ 등 제시한 모든 기술들이 어떻게 AI를 이용해 우리의 삶을 지켜주고 풍요롭게 만드는지 알 수 있었다.

제4차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AI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감성적 가치는 빛을 잃어갈 수 있음을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리에 쓰러져있는 사람을 실시간으로 탐지해 도심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딥뷰’기술, 고령화 특화 로봇 등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소외된 부분까지도 밝혀주는 선한 과학기술의 탄생은 앞으로의 사회 모습에도 긍정적인 기대를 갖게 한다.

미래에는 혁신적인 과학기술만큼이나 선한 과학기술이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으면 한다. 선함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이며, 이를 과학기술과 결합하는 것 또한 인간만이 이뤄낼 수 있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ETRI에서도 앞으로 보다 많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기술들이 탄생하기를 바라며, 이는 국민들이 ETRI에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는 이유일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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