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섭 대전 서구청 자치분권과장

1991년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후 지난 30년 동안 우리 사회는 자치(自治)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올 1월부터 시행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자치분권 2.0시대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자치분권의 추진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참여가 다양하게 반영돼 있다. 자치의 패러다임이 ‘지방자치’에서 주민의 권리를 신장하는 ‘주민자치로 바뀐 것이다.

대전 서구는 지난 2019년부터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추진했다. 갈마1동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도마1, 2동, 월평2동으로 시범사업을 확대해 지난해 23개 모든 동에서 주민자치회 전환을 마쳤다.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향한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며, 자치분권 2.0 시대를 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현재 23개 동에서 82개의 분과위원회, 약 980여 명의 주민자치위원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성격과 위상이 다르다. 주민자치위원회가 동 행정에 대한 단순한 심의·자문 역할에 그쳤다면 주민자치회는 주민총회를 통해 직접 마을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한다. 새로운 공공성 창출과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명실상부 주민 대표기구인 셈이다. 이에 따라 주민자치회는 자발적인 주민 역량을 결집하고 대표성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만큼 개선하고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무엇보다 주민자치위원회에서 주민자치회로 이름만 바뀌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지역 특성을 반영한 주민자치회 활동과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 마을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는 과정이다. 처음 해보는 일이며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천천히, 즐겁게,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주민들의 자치에 대한 경험과 흥미가 쌓여야 한다.

법적·제도적 보완도 시급하지만 중요한 것은 주민의 성숙하고 자발적인 참여 의식이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주민에게 더 많은 참여와 경험의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이와 함께 회비적 성격으로 부과되는 주민세는 지역 주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각종 공모사업, 주민참여예산 등을 통한 예산 지원과 공원·체육시설 관리, 도서관·공영주차장 운영, 광고물 정비 등 수탁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민자치회가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여건도 조성돼야 한다.

서구 주민자치회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23개 동별로 주민 주도의 지역 문제 해결과 마을계획 수립 등 마을자치 확산을 위해 주민들이 함께 소통하고 논의하며 실천해 가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주민자치 현장의 바람과 의견을 잘 반영하고 개선해 주민자치의 성과를 주민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민자치회가 살아야 지방자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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