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문 대전서구청장 권한대행

정부는 지난13일 오전 강원과 경북 동해안의 재난 사태를 해제했다. 지난 4일 발생한 울진 산불의 주불이 9일 만에 진화된 것이다. 진화 소요 시간은 총 213시간으로 역대 최장 시간의 산불로 기록됐다. 피해도 커서 1986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 피해를 냈다. 산림 피해 면적은 총 2만 4,940ha로 서울시 면적의 41%에 달한다. 이전 최대 산불은 지난 2000년 발생한 동해안 산불로, 당시 피해 면적은 2만 3,794ha였다.

문제는 해마다 산불이 빈번해지고 피해 규모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월 1일~3월 15일 기간에 발생한 산불은 2020년 80건, 2021년 126건에 이어 올해는 245건으로 급증했다. 경제적 피해도 크다.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한 직접적 경제 피해는 6,758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와 이번 산불 피해 추산액 1,700억 원을 더하면 액수는 1조 원에 육박한다. 산불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러한 대형 산불은 인재(人災)의 성격이 짙다. 지난 10년간 30ha 이상의 산불 35건 가운데 33건이 실화나 소각으로 시작됐다. 이번 산불 역시 담뱃불과 고의로 불을 지른 게 불씨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산불을 가볍게 생각하는 ‘산불 불감증’이 부른 재해다. 산불방지 국민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44%가 불을 피우거나 발화 물건을 소지하면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절반 이상은 산불을 내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람의 부주의가 대형 산불의 불씨라면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대형 산불을 부르는 인화성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강수량은 2.6mm로 평년(26.2mm)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2월까지 합친 강수량도 12.1mm로 35년 만에 역대 최저치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심각한 가뭄으로 전국의 산들은 불씨만 있으면 언제든 화염에 휩싸일 수 있는 화약고와 같은 상태였다.

기후변화로 인한 대형 산불 증가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호주에서는 심각한 가뭄으로 2019년 9월부터 이듬해까지 무려 6개월 동안 산불이 이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지난해 9월 초대형 산불로 서울 면적의 3배가 넘는 산림이 사라졌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형 산불은 대기 온도를 높여 가뭄을 심화시키고 산림을 파괴해 지구의 자정 작용을 둔화시키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산불의 역습인 셈이다.

큰 산은 아니어도 대전 서구에는 구봉산, 오량산, 도솔산 등 5,124ha의 산림이 있다. 서구는 오는 5월 15일까지 산불방지대책본부를 운영해 산불 발생 요인을 예방하고 산불 피해 최소화에 나선다. 산불기동대 48명을 편성하고 무인 카메라 등으로 산불 상황을 수시로 확인해 진화 장비를 즉시 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입산자 실화 및 소각으로 인한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 드론을 활용한 적극적인 감시 활동을 벌인다.

역습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상시적인 대비책을 갖추는 것이다. 서구는 작은 불씨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촘촘한 감시 및 예방 체계로 산불 방지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시민들께서도 산에서는 어떤 인화성 물건도 소지하지 않는 시민의식을 당부드린다. 기후변화 등으로 산불의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산불의 불씨는 늘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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