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ETRI 경영기획실 행정원

[충청투데이 이정훈 기자] 매년 여름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각국은 북서태평양에서 찾아오는 한 손님을 예의주시한다. 진로는 어디로 오는지 강도는 얼마나 센지 여러모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이 존재는 바로 태풍(颱風)이다.

일반적으로 태풍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채 육지로 내습해 심대한 재산 및 인명피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사라호(1959년), 루사(2002년), 매미(2003년) 등은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힐 만큼 한반도를 깊게 할퀴고 상처를 남겼다. 때문에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이 과학기술계의 태풍이 돼야 한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태풍은 여러 혜택을 주기 때문에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다. 태풍은 여름철 적도 인근에 과잉된 열에너지를 중위도 이상으로 끌어올려 지구상의 열 불균형을 해소하고 연안 인근 바닥에 쌓인 무기염류를 상층으로 뒤집어 녹조와 적조를 제거해주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농경지에 적절한 비를 내려 가뭄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을 주는 등 여러 순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출연연이 과학기술계의 태풍이 돼야 한다는 말은 순기능을 중심으로 사회에 파급력을 미치자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최근 과거보다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대학을 포함한 민간의 역할이 많이 늘어났다지만 연구개발 과정에 있어 출연연의 중요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출연연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과학기술계 전체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해야 하는 셈이다. 필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출연연은 태풍이 범지구적 열 불균형을 해소하듯이 연구성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구심점이 돼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민간기업 등과 적극적인 협업을 추진해 출연연에서 발굴된 연구성과가 사회 전반으로 이전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민간은 사업화 및 개발단계 연구를 위주로 수행하므로 기초 및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는 출연연이 중심이 돼 수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출연연은 민간의 역량 성장을 위해 핵심원천기술 등을 발굴한 후 파급해야 하는 바, 이러한 연구성과의 흐름과 선순환을 구축하는 것이 바로 출연연의 책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한 국가를 넘어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치는 태풍처럼 출연연의 연구성과도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산·학·연 곳곳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에도 각 출연연이 국제 특허와 SCI 논문 등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보다 제고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한층 더 뼈를 깎는 노력이 요구된다. 날로 경쟁이 심화되는 글로벌 연구 생태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연구성과의 양(Quantity) 뿐만 아니라 질(Quality)적 우수성까지 담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적 성과 제고는 원천적이고 상용 가능한 기술개발로부터 출발하므로 역량을 갖춘 출연연의 역할 또한 지대하다 할 것이다.

물론 출연연이 중심이 돼 국내·외 영향력을 제고하는 것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 유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태풍의 양면에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자리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필자는 지구상의 어떠한 자연현상이 지속되는 것은 분명 지구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더 많이 미치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라 믿고 있다. 이처럼 출연연이 양의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효자 태풍이 돼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버팀목으로 한층 더 우뚝 솟는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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