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올해 달력도 이제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엊그제 시무식을 한 것 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다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 해를 되돌아볼 때 빠지지 않는 단어는‘다사다난(多事多難)’이다. 더구나 코로나19가 몰고 온 거대한 변화는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기에 잊히기 어려운 해일 것이다. 시구나 노랫말을 보면 우리가 삶에 지치고 힘들 때 가끔은 하늘을 보자는 말이 눈에 띈다. 또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작은 들꽃에 눈길을 한번 주라고도 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지만 잠시 옆과 뒤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앞만 보고 가다 보면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을 놓치고 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반추하면 좀 더 성숙한 위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중국 역사에서 대표적인 명군으로 손꼽히는 당태종 이세민에게는 세 개의 거울인 삼감(三鑑)이 있었다고 한다. 구리거울(銅鑑), 사람거울(人鑑) 그리고 역사거울(史鑑)이다. 구리거울은 외모를 비춰 주어 바른 자세를 갖게 하였고, 충성스러운 인재인 사람거울은 바른길을 가게끔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역사거울을 통해서는 흥망성쇠 하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바르게 통치를 할 수 있는 지침을 얻었던 것이다. 역사를 거울삼으면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라 할지라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재난관리에서도 지난 역사에서 배우고 깨닫는 활동은 필수적이다. 세계 화재사에 기록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힌 서울 대연각호텔 화재는 실종자까지 더하면 200여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였다. 올해 성탄절은 대연각호텔 화재가 발생한 지 50년이 되는 날이다.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뀔 정도의 시간이 흘렀으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을 수 있고 젊은 세대는 무슨 사고였는지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1971년 12월 25일 성탄절 아침에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는 경제개발중심의 국가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챙기지 못한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강한 경종을 울렸다. 당시 우리나라는 국산 소방차 한 대 생산하지 못할 정도로 소방력이 매우 열악한 수준이었다. 수도 서울이었지만 고가사다리차와 같은 특수 소방차를 제대로 구비하지 못했다. 화재 예방과 방화시설은 초보 수준에 머물렀고 자동소화시설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 사고를 겪고 나서야 대형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었고 소방장비 현대화 정책도 추진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충남소방은 1950년대에 시골 의용소방대에서 사용했던 드럼통으로 만든 리어카 소방차를 복원해 시연회를 했다. 십억 원이 넘는 첨단 소방차가 배치되고 있는 시대에 70년 전 장비를 복원한 이유는 구경거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통해서 현재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면적인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었다. 소방차가 없다는 핑계를 대기 전에 리어카에 드럼통이라도 싣고 달려갔던 선배들의 고귀한 정신을 배우고자 한 것이다.

한편 2년 동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고통을 넘어 앞으로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보름 정도 후면 120년 충남소방의 발전사를 정리한 사료집이 발간될 예정이다. 이 사료집은 책을 넘어 가장 안전한 충남을 만드는 노력에 훌륭한 스승과 등대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에게 교훈을 남기지 않고 지나간 역사는 없었다는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이치를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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