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국회의원

현 시대를 진단하는 말 중 최근 많이 언급되는 용어가 있다. 바로 ‘기술패권’이다. 세계 패권 경쟁의 중심축이 국방·경제에서 기술로 급격히 이동하고 신성장동력을 둘러싼 국제 과학기술 경쟁이 심화되자 나온 개념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기술패권 시대에 살고 있다. 갈수록 격화하는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은 기술패권 시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는 과학기술혁신정책 아젠다 2021’에서 기술패권 경쟁 본격화 대응을 주요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 등 첨단기술 확보를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추격형 국가를 넘어 선도형 국가로 도약하려면 과학기술 혁신이 필수적이고, 성장동력 육성과 관련해 다양한 정책들의 실행력 제고를 위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학기술의 전략적 관리체계 마련

과학기술 혁신의 출발은 체계적인 전략기술 발굴 및 육성이다. 미국이 올해 ‘Endless Frontier Act’를 통해 10개 핵심기술(key tech.)을 선정해 1200억 달러를 투자하고, 국립과학재단에 기술혁신국을, 국무부에 기술협력국을 설치하기로 한 것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한국판 ‘Endless Frontier Act’를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 우리나라의 전략기술 관리 체계는 지나치게 분절적이다. 분야에 따라 산업·국방·원천, 목적에 따라 지원·육성·보호 등으로 분리돼 개별 법령에서 기술을 지정하고 보호·육성하다 보니 10여 개의 체계에 5200여 개의 기술이 난립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보-산업, 지원-보호 간 연계도 되지 않고 국가의 혁신 역량을 집중할 수도 없다. 한 마디로 전략성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의 전략성 강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난잡하고 복잡한 분류 대신 범부처 차원에서 전략적 가치가 높은 중단위 기술을 전략기술로 엄선하고 집중 지원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기술이 안보에 관한 기술인지, 산업에 관한 기술인지 종류와 가치를 따지고, 우리가 우위를 확보한 기술인지, 추격해야 하는 기술인지 경쟁력을 따져서 유형별로 맞춤형 육성 전략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혁신본부에 국가 R&D 예산 배분·조정 기능을 맡겨 전략성 강화를 시도해왔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과학기술 전략화를 달성할 수 없다. 단순 분배자(Distributor) 기능을 넘어 기획·조정자(Coordinator) 기능이 필요하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특정 전략산업을 지원하는 제도와 별개로 전략기술의 선정·관리·육성 체계에 대한 제도화가 필요한 것이다.

국가 전략기술 정책을 대통령 아젠다, 범부처 정책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의 역량과 역할 강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자문회의는 대통령이 의장인 헌법기구로서 국가기술 정책의 기본방향과 주요 의제에 대한 정책자문을 수행하고 있다. 이 자문회의의 역할을 확대해 청와대-자문회의-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이어지는 전략기술 컨트롤타워를 정립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범부처 차원에서 과학기술 전략이 우선 정립되고 그 전략을 바탕으로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전국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공공 연구조직 R&R도 분명해질 수 있다.

▲지역 과학기술 역량 강화

과학기술 전략화가 성공하기 위해선 부족한 지역 과학기술 역량 강화도 필수적이다. 현재 국가 R&D 활동의 60% 이상, 대학 R&D 성과(특허, 기술이전 등)의 약 50% 이상이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다. 그리고 17개 시·도 예산 중 과학기술 분야 예산은 0.43%에 불과하고, 이 중 56.6%는 부처 사업 매칭에 사용되고 있다. 지역의 혁신 재원 자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사업 역시 중앙부처의 하향식 사업이 대부분인 실정이다. 이대로는 과학기술 발전이 오히려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범국가 차원의 집중적 역량 동원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제 국가 전략기술에 대한 중앙과 지역의 협업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지역의 혁신 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지역혁신 컨트롤타워를 각 지역별로 지정·운영해 국가 차원의 전략기술 육성 체계와 연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수많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및 대학이 집중돼 있는 우리나라 대표 과학도시 대전의 지역혁신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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