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 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우리 옛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가 있다. 또 몇 년 전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책이 많이 팔린 적이 있다.

모두 어린 시절에 접하고 배우는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우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어린 나이에 중요한 습관들을 가진다. 정서나 행동, 그리고 학습의 측면에서 이후 생애 동안 영향을 주는 많은 것들이 아주 어린 나이에 만들어져 몸에 배게 된다.

우리 교육청에서 초등학교부터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하자’고 제안한 이유 역시 이후의 생애 동안 학생들의 학습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교육과 영유아시기의 교육이 다른 교육에 비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교육의 결과가 나타나는 고등학교나 대학의 과정에 더 주목한다. 마치 어린 묘목을 잘 키워서 열매를 잘 맺는 나무로 키우려하지 않고, 열매가 달릴 시기에 나무 아래에서 열매를 기다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영유아에 대한 교육과 보호는 그 중요성과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무관심에 방치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관할 부처는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나뉘고, 지역에서는 교육청과 시도청으로 나누어져 있다. 학부모들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선택해야 하고, 시설은 국공립과 사립, 민간과 법인, 그리고 직장으로 나뉘어 있다.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교사는 대학원을 졸업한 교사로부터 평생교육시설에서 사이버 강의을 수료한 보육교사까지 접근경로와 채용방식, 그리고 교사에게 요구하는 자질과 자격이 천차만별이다.

유아교육과 보육 모두 유아교육법과 영유아교육법상의 무상교육과 무상보육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해놓았으나, 실제로는 설립자나 시설에 따라서 수십만 원까지 부모에게 교육비와 보육비를 징수하고 있다. 법이 정한 무상의 원칙이 현실에서 힘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교육청과 지자체로 나뉘어 영유아 수요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공급에 대한 통합적 계획도 없이 각자 자기 역할만 하면 된다는 식의 행정이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언니와 오빠는 걸어서 학교로 가지만, 어린 동생은 노란 통학버스에서 몇십 분을 기다려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도착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종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다니는 연령인 만 5세까지의 영유아는 2만 6천여 명이다. 0세에서 5세까지의 영유아 중 1만 5천 명을 어린이집에서 수용하고, 만 3세에서 5세까지 유아 중 6천 6백여 명을 유치원이 수용하고 있다. 나머지 4천여 명 중 아주 어린 영아들은 상당수가 가정양육 중이고 나머지 영유아는 학원 등 다른 곳에서 수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육과 돌봄을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돌봄을 교육보다 덜 전문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아를 돌보는 행위에는 매우 전문적인 부분이 있다. 몇 년 전 유치원 교사들이 학급에서 소변을 지린 학생을 어떻게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돌볼 것인가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을 보았다. 돌보는 과정에서 태도나 말투, 영유아의 생활에 개입하는 방법 등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아이들의 이후 생애에서 정서와 행동, 그리고 학습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유아를 돌보는 행위는 바로 그 속에 교육이 녹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교육을 하는 과정은 당연히 돌봄을 수반한다. 교육의 상황과 공간에서도 돌봄은 이루어진다. 특히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은 더 그렇다.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돌봄과 교육은 분리할 수 없이 함께 가야 한다.

이제 2만 6천 명의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잘 돌보고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큰 이야기가 시작돼야 한다. 교육청과 시청,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같은 수준의 시설에서 같은 역량을 가진 선생님들이 행복하게 우리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칠 수 있는 환경, 부모들은 노란버스에 아이들을 맡기지 않고 손잡고 등원이 가능한 집 가까운 ‘유아학교’에 아이들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꿈은 특별자치시인 이름에 걸맞게 세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제라도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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