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 조선호 충남소방본부장

‘만약 우리에게 한글이 없었더라면’을 가정해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조선시대처럼 한자로 된 책으로 공부하고 한자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겠지만 그 정도로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글을 종이에만 쓰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은 만든 사람과 반포일 그리고 글자를 만든 원리까지 알고 있는 세계 유일의 문자이다. 그리고 배우고 쓰기에 아주 쉬운 글자이기도 하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할머니들이 한글을 배워 까막눈으로 살아야만 했던 오랜 세월의 한을 훌훌 던져버리고 시를 쓰고 시화전까지 열었다는 감동적인 기사를 종종 만나게 된다. 만약 우리가 쓰는 문자가 한자였더라면 고령의 노인들이 문자를 새롭게 배워서 시까지 쓰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백성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글로 옮기지 못하는 가슴 답답함을 안타깝게 여기고 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글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같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은 재난으로부터 백성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종 8년인 1426년 음력 2월 한성부에서는 최소 32명 이상이 사망하고 민가만 하더라도 2170호가 소실된 대화재가 있었다. 그를 계기로 소방사무를 전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설기관인 ‘금화도감(禁火都監)’이 탄생하게 된다. 체계적이지 못했던 소방 대책의 하나로 화재 예방부터 진압까지 법령에 근거해 일관되고 전문적으로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조직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또한 추진하는데 난관도 많았지만 근원적 차원에서의 소방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고 도로를 확장하는 사업도 과감하게 집행했다. 날아 온 불티가 초가지붕에 떨어져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가 직접 기와를 생산해 저렴하게 공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금화조건(禁火條件)’을 제정해 소방기구의 배치와 관리, 근무수칙, 인력동원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실효성 있는 화재대응매뉴얼 제정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종대왕은 직접 재난상황을 관리하고 대책회의를 주재하며 세심한 부분까지 돌보았다. 한성부 대화재 당시 세종대왕은 강원도에 행차 중이었는데 화재 보고를 받고 즉시 환궁을 명했다. 모든 의전 절차는 생략하도록 했으며 가장 먼저 화재민에 대한 긴급구호 대책부터 지시했다. 그리고 신분의 고하를 불문하고 화재진압에 공을 세운 사람은 꼭 찾아서 포상하고 격려해서 모범으로 삼도록 했다. 이처럼 현대의 관점에서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 소방행정의 제도적 기틀이 세종대왕 때 마련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를 두고 어떤 신문기자는 기사에서 세종대왕에게 ‘소방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5년 뒤인 2026년은 금화도감 창설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서 전문적인 소방행정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제도적 기반을 구축한 세종대왕이 추구하고자 했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행사가 열리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 행사장에는 각계각층이 모여 ‘위험사회’라고 일컬어지는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화재안전도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뒤지지 않게 된 결과는 하루아침에 얻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성숙한 안전문화를 조성하며 품질 높은 서비스를 시행하는데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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