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당진에서 직접 겪은 에피소드다.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한 좌석 건너에도 한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70~80대로 보이는 노부부와 50대 안팎의 아들 형제로 보이는데 노부부는 한 눈에 시골서 농사로 평생을 살아온 행색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 중 둘째 아들로 보이는 조금 젊은 사람은 이미 술이 취한 상태로 목소리 까지 우렁차서 그들의 대화 내용이 그대로 옆 좌석까지 들렸다. 가족 간에 무슨 다툼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젊은 아들의 술주정 모습이 거슬려 자리를 옮길까 생각하며 식당 내 자리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그 자리 나머지 가족들은 얼굴에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젊은 아들의 술주정 섞인 불평을 들어주고 있었다. 아버지로 보이는 노인 양반은 아들을 보며 자작으로 술을 마시고 있고 어머니는 말없이 술 취한 아들 앞으로 이런 저런 반찬그릇을 몰아주고 있다. 옆에 앉은 형은 물휴지로 동생이 식탁위에 흘린 술을 닦으면서 동생 술잔을 자기 앞으로 당기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동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이게 뭐지? 하면서 자리를 옮기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의 이상한 행동을 보게 되었는데 젊은 아들의 술주정 사연은 이러했다. 노부부는 평생 농사로 세 남매를 키웠다. 가정 형편상 큰 아들은 중학교를 끝으로 생업에 뛰어들고 딸도 마찬가지… 그런데 막내아들은 어찌어찌하여 전문대학까지 나오고 당진에서 건설관련 회사를 운영하여 살만큼 살고 있다. 아버지는 그동안 일궈놓은 집과 논밭을 3남매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기로 큰 아들과 협의하고 오늘 막내아들을 불러서 이 사실을 알린 것이다. 그러자 막내아들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누나와 형에게 재산을 주어야 하고 자신은 필요 없다고 아버지와 형에게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말없이 술잔을 들고 빈 술잔에 큰 아들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소주병을 따르고… 형이 동생을 보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너는 애들이 셋이나 되고 나는 하나 있는 아이 장가보냈으니 내 걱정할거는 없다.” 부모의 재산을 서로 양보하려고 싸우는 현대판 의좋은 형제의 현장을 보고 나오다 계산대 아주머니에게 “저쪽 술먹고 떠드는 자리 얼마 나왔나요? ”식사 안주 소주 3병 5만 8500원이네요.” 같이 계산해 주고 나오면서 막내아들의 투정을 말없이 따뜻한 눈빛으로 받아주던 노부부의 모습과 얼핏 들려온 형의 한마디 "그건 희생한 것이 아니여 사랑한거지, 동생이니까…"라는 말이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 온기를 느끼게 했다. 그 가족들의 표정과 그 자리에 감도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몸짓, 술 한 잔 마시고서야 말을 하는 막내아들의 부모와 형, 그리고 누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토로, 귀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유재석 당진시 면천면 삼웅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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