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 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이런 용어가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필자는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철이 들기도 전에 이른 새벽부터 신문 배달과 빵을 팔았다.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칠 때쯤에는 도마동의 축구공 공장을 다니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힘든 생활을 반복했다. 태권도 사범 생활도 하고 관광호텔에서 종업원으로도 일했다. 가난에서 탈출하려면 공부가 필요했지만, 가난했기에 먼저 일을 해야 했다. 미래를 꿈꾸기에는 현실이 너무 각박했다.

공무원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고 미래를 꿈꾸게 됐다. 첫 발령지는 당시 선화3동사무소였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를 위해 야간대학에 진학했고, 마침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덕분에 겸임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는 영예도 안았다. 어릴 적 막연하게 꿈꿨던 직업은 선생님이었다. 잠시나마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그 꿈도 절반은 이룬 셈이다.

진부한 과거 이야기를 꺼냈다고, 어쩔 수 없는 꼰대라며 너무 나무라지 마시길. 그토록 어려운 시절을 보낸 사람도 이 자리까지 왔으니 꿈과 희망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나 보면 그때가 그립더라는 공허한 청춘예찬을 하고자 하는 건 더욱 아니다. 연휴가 시작된 지난 18일은 제2회 청년의 날이었다. 청년들을 위한 정책 고민의 잔상이 추석 연휴까지 남아있다 보니 옛 시절이 떠올랐다. 고민의 끝은 늘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청년기본법이 제정됐다. 청년이 홀로 이겨내야 했던 어려움을 국가가 함께 나누겠다는 약속이다. 매년 9월 셋째 주 토요일을 법정기념일인 청년의 날로 정한 것도 이에 따른 것이다. 청년들의 현실적 고통을 해소하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방정부의 호응도 잇따르고 있으나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에 비해 재원과 권한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대전 서구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17년 서구 청년 네트워크를 발족하고 2018년 ‘청춘정거장’에 이어 올해 두 번째 청년공간 ‘청춘스럽’을 개소했다. 지난 8일에는 청춘정거장에서 청년공감 대화 ‘서행(西行)’을 마련했다. 서행은 청년들과 서구가 함께 천천히 나아간다는 뜻이다. 1인 유튜버, 1인 가구 등을 주제로 청년들과 토론하고 고충을 듣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당장 청년들을 만족시키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 발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서구가 공직사회의 변화와 구정 혁신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 공무원을 주축으로 밀레니얼 보드를 구성한 것도 이러한 취지이다. 공직사회 내부 청년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으면서 우리 사회 청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어렵다.

지금 돌아보면 어려웠던 시절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던 힘은 작은 관심과 연대였다. 어린 내가 안쓰러워 대신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아주던 종업원, 신문을 넣고 돌아서던 나를 불러 등을 토닥여주던 신부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던 나에게 자전거를 사주며 격려해줬던 공장 사장님. 꿈과 희망은 관심과 연대에서 나온다는 소중한 교훈을 남겨준 분들이다. 가끔 소환되는 그 교훈의 기억이 필자의 청춘예찬이다. 지금의 2030세대에게도 그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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