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우 대전송촌고등학교 교사

▲ 구민우 대전송촌고등학교 교사

 학생을 만나는 시간은 설렘 반 긴장 반이다. 올해로 21년차 교사지만 어떤 학생을 만나게 될지 항상 설레고 과연 교사로서 잘할 수 있을지 긴장하는 것은 여전하다.

 잠시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청소년기 우리 집 형편은 좋지 못했다. 기죽지 않고 열심히 학교생활하는 것이 효도라고 생각했다. 부모님 앞에서는 의젓해 보이려 했지만, 막상 학교에선 진로와 여러 걱정으로 환하게 웃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먼저 다가왔다. 수학을 가르쳤는데 문제를 틀려도 지적보다는 힌트를 주고 기다렸다. 교무실에 가면 문제지를 몇 권씩 챙겨줬다. 워낙 말이 없는 담임 선생님이었지만 항상 표정을 읽고 부족함을 채웠다. 그처럼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어렴풋 꿨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교사가 됐을 때 담임선생님에게 전화했다. "너의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으니 늘 조심히 말하고 기다려주는 선생님이 돼라", 선생님이 전한 조언이었다. 당시엔 말씀의 의미를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깨우치게 됐다.

 2009년 3학년 담임을 하던 시절, 학교에서 가장 문제가 많다는 학생이 우리 반이 됐다. 잦은 지각과 잠으로 보내는 수업시간, 교사의 말은 듣지 않고 학교 밖에선 각종 사고를 치던 학생이었다. 학기 초부터 상담할 때도 쉽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고 대답만 겨우 하던 학생이었기에 참 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여름방학에 그 학생의 아버지가 오랜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한없이 작고 슬퍼보였다. 항상 얼굴 한쪽에 드리운 그늘이 아버지 걱정이었을까 싶기도 했다. 학생의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울면서 "선생님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 너무 말을 안 듣고 속상하게 하죠? 너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 우리 00이는 청소도 깨끗하게 잘하고요, 잘못했을 때도 거짓말 안 하고 바로 사과하고 반성하는 착한 아이예요. 철이 없어 하는 실수는 점점 나아질 겁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우리 아이를 칭찬한 선생님은 처음이에요"라고 말했다. 일부러 없는 얘기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모든 학생에겐 저마다의 장점이 있다고 믿기에 계속 그의 장점을 찾아내려고 애썼고 기다렸다. 그해 그는 무사히 졸업을 했다.

 약 10년이 흐른 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이 왔다. 그 학생이었다. 그 사이 바뀌었던 내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한 것이다. 그는 밝은 목소리로 "선생님 덕분에 사람 됐어요. 군대 갔다 와서 직장 생활 잘하고 있습니다. 언제 밥 한번 사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면서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기억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제자, 그리고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았던 그가 멋지게 컸다니 고맙고 대견했다.

 나는 오늘도 학교에 간다. 가르치는 교사이기보다 기다려주는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연다. '육아(育兒)는 육아(育我)다(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를 키우는 것이다)’는 말처럼 힘든 순간도 분명히 있지만 이 길을 계속 걷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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