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코로나19 확산세에 무더위쉼터 폐쇄
갈 곳 없는 노인들, 폭염 속에 거리로 내몰려
방역당국 "향후 상황 고려해 개방 여부 결정"

5일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경로당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해 폐쇄됐다. 사진=전민영 기자
5일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경로당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해 폐쇄됐다. 사진=전민영 기자

[충청투데이 전민영 기자] “경로당도 오지 말라더니 공원 의자마저 테이프로 감아 들어가지 말라고 써 붙여놔서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집이라곤 바람 한 점 안 들어오는데 여기서라도 땀을 식혀야지 별 도리가 없어.”

한낮 뙤약볕이 내리쬐는 5일 오후 2시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정자에는 노인 10여명이 찌는 듯한 더위에 연신 부채질하고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경로당과 노인복지시설 등 실내 무더위쉼터가 문을 닫자 야외로 장소를 옮긴 노인들이다.

이날 대전의 낮 최고기온이 35도, 체감온도는 38도를 기록하면서 사실상 견디기 힘든 더위가 이어진 날이다.

정자에서 만난 노인 A(82) 씨는 “혼자 집에 있으면 할 것도 없으니 사람들과 모여 시간을 보내는데 경로당이 문을 닫아 여기서 만날 수밖에 없다”며 “집 근처 공원도 막아버려 다들 만날 곳을 찾다가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거리두기 격상 이후 경로당 등 무더위 쉼터들이 줄줄이 폐쇄돼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날 기준 대전지역에서 문을 닫은 무더위쉼터는 △동구 9곳 △중구 140곳 △서구 170곳 △유성구 195곳 △대덕구 122곳으로 총 636곳이다. 대전지역 실내 무더위쉼터 948곳 중 67%가 폐쇄 조치됐다.

무더위쉼터 폐쇄는 대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감염취약계층인 고령자들 사이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다. 문제는 무더위쉼터 폐쇄가 장기화하면서 초기에는 집에 머무르던 노인들도 쓸쓸함에 대화 상대를 찾아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5일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어린이공원에 야외 파고라가 폐쇄돼 있다. 사진=전민영 기자
5일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어린이공원에 야외 파고라가 폐쇄돼 있다. 사진=전민영 기자

최근 서구 일대 한 어린이공원에선 파고라가 폐쇄되면서 인근 주민들은 또 하나의 쉼터를 잃기도 했다. 공원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시는 이들이 많다는 민원 때문이다. 주민들은 방역수칙 위반자들을 단속해야지 아예 쉼터를 막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노인 B(81) 씨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단속하면 되지 왜 낮 시간대 이용을 못하도록 막아 버리냐”면서 “동네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공간이 없어지니 더운데도 만날 곳을 찾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초반에는 감염이 걱정돼 집에 있었지만 이젠 내가 외로워 죽을 것 같아 힘들어도 집을 나온다”고 토로했다.

관할 자치구는 폭염으로 고통 받는 노인들의 상황을 인지하고는 있으나 연일 100명에 가까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발생 등을 막기 위해선 실내 다중이용시설 차단이 시급하다고 설명한다.

방역당국 관계자는 “현재 대전에서는 거리두기 4단계가 시행 중이며, 확산세 또한 엄중하기 때문에 고령층이 다수 모이는 무더위쉼터를 폐쇄할 수밖에 없다”며 “폐쇄된 일부 야외쉼터는 향후 상황을 고려해 개방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전민영 기자 myjeon@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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