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우 배재대 문화예술대학장

녹음이 절정인 7월의 여름은 깊다. 이렇게 깊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대자연의 여름은 녹음만큼 더위도 절정이다. 녹음이 짙은 숲길에 들어가 산림욕을 하고 싶다. 그런 다음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다면 여름 피서가 따로 없을 테다.

개인적으로 기반시설은 인프라가 풍부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미술관을 많이 지으면 뭐 하냐느니 전문 인력이 없다느니 하는 비판이 있더라도 일단 사회의 문화 토대를 형성하는 인프라부터 구축하자는 쪽에 찬성한다.

그런데 지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둘러싼 지자체의 이전투구 각축전 말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유족 측이 결행한 미술품 기증을 놓고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을 짓겠다고 들고 일어나니 말이다. 국가기관에 기증된 작품은 엄연히 고인과 유족의 뜻이다. 정작 기증한 측은 아무 말이 없는데 지자체의 욕망에는 이에 대한 배려가 결여돼 있는 듯하다.

기증 작품을 받는다면 당장이라도 미술관을 개관일 기세지만, 정말 지자체에 미술관을 지을 여력이 있기나 한가. 이슈를 띄우는 데 급급하기만 한 모습에서 지자체의 얕은수가 보인다. 미술관은 그런 식으로 이용돼선 안 되는 공간이다.

아쉽게도 대전에는 미술관다운 현대미술관이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립미술관도 작가들에겐 문턱이 높다. 대관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나마 대전시 미술대전은 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니 다행이다. 현대인에겐 위로를 주는 공간이 필요하고 이는 미술관이어야 한다. 미술관만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감정 공간’은 없다.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은 어떠한 사상이 아닌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다뤄 좋다.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인생을 어떠한 시각에 기대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기회를 미술관은 준다. 사고의 즐거움을 미술관에서 향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미술관에 함께 간 소중한 사람과 나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인생이리라.

현실의 나를 직시하게 하는 예술의 세계를 먼 걸음 없이 가까이서 자주 접할 수 있다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보편적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를 삶에 적용한다면 더욱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지자체는 ‘이건희 미술관’을 짓는 일처럼 이슈만을 쫓지 말고 예술 공간의 진정성과 감동을 주는 현대미술관 건립에 힘써야 한다.

현대미술관이 조속히 건립돼 지역의 문화 인프라가 풍부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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