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점검] 충북 생활임금조례 논란
전국 243개 지자체 중 47%가 조례 제정
법제처 등 유권해석 “수탁기관 강제안돼”
현장 적용 불가 조례 제정 “실효성 없다”
“임금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결정돼야”

▲ 충북도의회 본회의. 충청투데이 DB

[충청투데이 이민기 기자] 미국에서 본격화한 이른바 생활임금이 충북지역에서도 조례를 통해 제정됐다. '충청북도 생활임금 조례안'이 도의회 본회의장 문턱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충북도는 조례안 제3조 적용대상이 민간 영역까지 담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하며 조례안이 위법하다며 재의요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노동계의 의견만 수렴하고 기업의 입장은 외면했다는 게 충북도와 경제계 등의 시각이다. 반면 도의회 일각과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충북비정규직본부는 조례 제정은 순리라며 "최저 임금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자평을 내놓았다. 생활임금 조례안은 법적 가부 해석과 달리 현실적 안(案)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조례안이 법적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대법원 판례와 특히 법제처의 유권해석 등이 근거다. 생활임금 조례의 앞뒤를 살펴보면서 논란의 '핵심'이 무엇인지 짚어봤다.

생활임금론은 지난 1990년대부터 미국에서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삶의 질 향상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제도화된 이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각국으로 확산했고, 우리나라에서는 2013년 서울 성북구와 노원구에서 행정명령을 통해 처음으로 도입됐으며 조례로는 2014년 경기 부천시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대됐다. 여기서 말하는 근로자는 단기계약직을 뜻한다. 즉 공무직 이외 단순행정보조, 산불감시원 등이다. 단기계약 근로자의 임금을 최저임금보다 다소 상회하는 수준에서 지방정부가 조례로 규정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게 생활임금 제정론 측의 입장이다. 실제 전국 243개 지자체(광역+기초) 가운데 47%인 115개가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했거나 43%인 105개 지자체에서 생활임금을 시행하고 있다. 바로 이 대목이 노동계와 도의회 일각이 주장하는 생활임금 제정론의 근거로 작용한다. 즉 도의회는 심사보고서에서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것은 실익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현재 충북의 경제적·사회적 여건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시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타 지자체와 비슷한 범위로 정하는 게 실효성 확보 측면에서 적절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판단했다. 민간 영역을 포함한 생활임금 조례안이 적법하지 않지만 243개 지자체 중 47%인 115개가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한 만큼 충북 역시 이에 따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란 얘기로 풀이된다.

노동계와 도의회 일각은 광역단체 17곳 중 무려 14곳이 생활임금 조례안을 마련한 점도 근거로 삼는다. 노동계 등은 "왜 충북도만 서울시, 경기도 등 타 광역단체의 사례를 따르지 않으려 하느냐"고 따져 묻는다. 타 광역단체서도 충분히 논의하고 검토하는 과정을 거쳐서 제정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충북도는 "민간 영역까지는 도청의 권한이 없다"며 법적 원칙을 강조한다. 근거 역시 차고 넘친다. 법제처는 2021년 1월 27일 충남 천안시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사무를 위탁받은 기관·단체 등에 소속된 근로자를 생활임금 적용 대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조례를 정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조례로 규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답(의견20-0299)했다. 그 이유로는 "수탁사무의 관리·감독과 무관한 수탁기관 단체 내 보수 등에 관한 조례 규정 대상인 자치사무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수탁기관의 장은 민간에 해당하므로 이들에게 특정한 의무를 부과하기 이해서는 지방자치법 제22조 단서에 따라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20일 도의회를 통과한 조례안에 적용하면 생활임금 조례는 부적법하다. 조례안은 △1-도 및 출자출연기관 △2-사무위탁기관 및 공사용역 업체 △3-제2호 하수급인 등을 적용대상으로 규정했다. 충북도는 공적 영역으로 자치단체장의 권한이 미치는 1호만 가능하고 민간 영역인 2~3호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법제처는 "수탁기관의 소속 근로자 보수에 관한 사항은 해당 기관·단체의 장이 해당 근로자와의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수탁기관 소속 근로자를 생활임금 적용대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은 조례로 정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심지어 2014년 경기도는 경기도의회를 향해 생활임금조례안 재의요구를 하며 그 이유로 "도지사는 최저임금법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 소속 직원에 대한 임금을 책정해 지급할 의무가 있을 뿐 이외의 추가적인 법적의무를 부여하는 상위법령의 규정은 없다"며 "도소속 근로자에게 일정액의 생활임금을 지급하도록 조례로 강제하는 것은 도지사 고유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법하다"고 말했다. 공적 영역인 경기도 소속 직원을 대상으로 한 생활임금 조례 조차 자치단체장을 강제해 제정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대법원 판례(2001추57)를 보면 "지방의회가 지방자치단체장의 고유권한이 아닌 사항에 대해 그 사무집행에 관한 집행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지방자치법의 관련 규정에 위반돼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렇다면 먼저 생활임금 조례안을 제정한 14곳의 광역단체는 실제 현장에서 조례상의 적용대상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적으로 '그렇지 않다'로 압축된다. 인천, 서울, 부산, 광주, 전남, 제주 등 6개 광역자치단체는 고시를 통해 적용대상을 축소해 적용하고 있다. 법률의 근거가 없어 적용이 불가한 민간 영역을 제외할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이와 맥을 같이하는 사례로는 최근 조례를 제정한 울산(2021.3), 경남(2019.12), 세종(2017.11) 등 3곳이 적용대상을 도와 출자출연기관 소속 근로자로 한정한 점이 꼽힌다. 먼저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의 운영사례를 참고해 실효성을 감안해 조례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적용 불가한 조례를 억지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병희 충북도 일자리정책과장은 "조례안에서 생활임금을 민간부문에 적용하는 것은 사업주에게 해당 근로자에게 생활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를 부하는 것이므로 법률에 위임이 있어야 가능한데 법률위임이 없는 만큼 민간부문 적용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도의회가 조례 제정 과정에서 경제계의 의견이 공식적으로 수렴되지 않은 점도 지적된다. 이해관계에 놓인 민간 영역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조례가 제정된 것은 일방적이라는 얘기다.

한 경제계 인사는 "최저임금제도만으로도 경제계는 상당한 부담"이라면서 "임금도 가격인데 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것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법 제6조에서 사용자가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임금지급과 관련해선 추가적으로 의무를 부과하도록 하는 내용을 규정하거나 조례로 정하도록 위임하지 않고 있는 게 기저에 깔려 있다. 조례안은 노사 양측이 참여하는 생활임금위원회 설치운영에 관한 안(제4조~제6조)도 담고 있지만 경제계는 조례안 자체가 법령에 위반되고 특히 '임금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될 사항'이라며 생활임금위원회 구성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는 시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충청북도 생활임금 조례안'은 법제처와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춰보면 원칙적으로 상위 법령에 어긋나지만 상당수 지자체가 조례를 제정했다는 점을 근거로 삼아 만들어진 비상식적 산물(産物)로 보인다. 충북도는 법령 등을 다시 검토하며 재의요구 여부를 신중히 고민하고 있다.

이민기 기자 mgpeace21@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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