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코로나19(이하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우리의 일상이 바뀌고 있다. QR코드로 인증 받고 안면인식 체온 측정기에 얼굴을 들이밀어야 다중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위치정보, 신용카드 사용내역, 인공지능 CCTV 등의 정보기술을 이용하면 코로나 접촉자의 동선도 확인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했을 때, 중국은 코로나 방역을 인민전쟁으로 인식했다. 하늘은 감시용 드론으로 가득 찼고 건강앱과 안면인식 CCTV 등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도시 봉쇄라는 초강수를 뒀다. 하지만 디지털 감시 기술이 코로나 방역뿐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팬데믹 공포가 소멸됐던 벤담의 파놉티콘을 부활시킨 것이다.

파놉티콘은 ‘모든 것을 본다’라는 뜻으로 공리주의자 벤담이 제안한 감옥이다. 파놉티콘은 원형감옥으로 건물 중앙에 탑이 있어 감시자가 머무르고 건물 벽을 따라 수용실이 배치돼 있는 구조다. 벤담은 학교, 공장, 병원까지 파놉티콘이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파놉티콘의 운영자가 될 야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만인의 행복을 위해 파놉티콘이 필요하다는 벤담의 주장은 소수자의 권리를 억누르고 착취를 합법화하는 대명사로 전락되며 역사의 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공동체 안전이 위협받으면서 사람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장례식장, 특수학교, 유치원, 수술실에 잠재적 범죄를 감시하기 위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언론매체를 통해 수시로 보도되고 있다. LH공사는 공원 여성 화장실에 안면인식 CCTV을 설치해 잠재적 성범죄자인 남성의 출입을 감시하자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CCTV와 같은 감시 장치를 설치하게 되면 잠재적 범죄자는 스스로 규율을 지키게 되고 이를 통해 의료사고, 성범죄, 아동학대, 갑질행동 등 범죄가 줄어들거라는 18세기 벤담의 철학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모든 잠재적 범죄자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는 디지털 파놉티콘의 세상에 살자는 말과 같다.

위기 속에서 그 사람의 가치가 드러나듯 국가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과 달리 팬데믹을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미국은 개인정보와 민주주의 가치에 벗어나는 감시 기술 대신 의학 연구와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중국식 철통 감시 방역의 유혹을 벗어 던지고 인류 본연의 가치에 투자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mRNA 백신을 개발했다. 이처럼 인류 문명은 감시통제가 아닌 인간 본연의 가치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혁신돼야 한다.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담임선생님과 토론하고 진료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분석돼 맞춤형 의료와 로봇수술 등이 실현돼야 하며 인공지능 경찰을 꿈꿔야 한다. 이것을 이루어 내는 것이 4차 산업 혁명이다. 어떤 기술도 인간의 가치와 개인정보를 보호하지 못한다면 결국 디지털 파놉티콘일 뿐이고, 철학자 들뢰즈가 말하는 통제사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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