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서 목숨걸고 조국위해 헌신
“총소리 들으며 추위와 사투”
88세 나이에 71년 지난 군번을 기억

▲ 사진은 김윤화 할머니와 장창우 전 논산경찰서장. 사진=김흥준 기자

[충청투데이 김흥준 기자] “때로는 폐허가 된 건물 마룻바닥에서 북한군의 기관총 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추위와 싸웠습니다.”

1950년도에 인천여상을 다닌 순수한 18세 소녀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적군과 싸웠다. 그 소녀가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 여든여덟이 됐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 안심리에 사는 김윤화 할머니<사진>가 그 주인공. 그는 6.25전쟁이 터지면서 비록 여자지만 오로지 나라를 지켜야 겠다는 일념으로 부모허락도 받지 않고 여자 의용군 2기생(383명) 시험을 봐서 군인이 됐다. 여성 최초 전투군인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도 '0995745'란 군번을 또렷이 기억한다. 88세 나이에 71년이 지난 군번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만큼 군 생활의 소중한 추억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여군훈련소인 당시 서울 일신국민학교에서 2개월간 칼빈소총을 들고, 행군과 수류탄던지기, 각개전투 등 혹독한 훈련을 받고 9사단으로 배치됐다.

9사단 군수과 소속으로 행정업무를 수행했지만, 전시 중이어서 동기 15명과 함께 천막과 땅굴 속에서 생활하며 트럭을 이용해 수시로 이동했다. 긴박한 상황인지라 암호를 알아야만 이동할 수 있었고, 가까운 거리도 항상 칼빈소총을 들어야만 했다. 때로는 천막에서, 때로는 폐허가 된 건물 마룻바닥에서 북한군의 기관총 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추위와 싸웠다.

전쟁이란 기억은 고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군인으로서 자부심도 여전했다. 지금도 동기들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그는 군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기에 지난 2015년 11월 정부로부터 국가유공자 증서를, 2016년 6월에는 호국영웅기장증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학교로 복귀하지 않고, 군 복무를 계속했다. 논산 육군훈련소로 전입해 친한 동기의 남편 소개로 당시 군무원인 이북출신의 남편과 1955년 결혼해 지금까지 제2의 고향인 논산시 연무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71년 세월이 무색합니다. 열여덟 꽃다운 제가 벌써 아흔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국군장병의 요람인 훈련소가 위치한 제2의 고향인 논산에서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6·25전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의 아들인 장창우 전 논산경찰서장(현 대전경찰청 청문감사담당관)은 "국가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으로 자원입대해 총탄이 빗발치던 현장에서 생사를 오가며 목숨을 걸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님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며 여성 전쟁영웅인 어머니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논산=김흥준 기자 khj50096@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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